관계 속에 존재하는 것
영화는 개발, 발전이 완료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구의 주인인 인간, 인간이 만들어 낸 복제인간, 복제인간들을 관리하는 블레이드 러너라는 서로 다른 존재들을 대비시키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인간을 지향하던 블레이드 러너, K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궁금해하며 그 과정을 좇아간다. 영화는 K의 정체성, 사멸되기 까지의 과정, 이를 통해 얻는 깨달음을 조명하면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리얼함이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 질문을 남기며 무겁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2049년, 지구는 황폐하기 그지없는 디스토피아이다. 가진 자들은 지구로부터 얻을 것을 다 얻어가고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간 뒤다. 부유하지 못한 자들만이 지구에 남아 그들을 만족시킬 복제품들, 복제인간들과 함께 활기 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일부 리플리컨트들이 노예성을 거부하면서 반란을 시도하자 인간은 지구 경찰인 '블레이드 러너'들을 만들어낸다.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도 아니면서 인간이 만들어낸 생체로봇, 리플리컨트도 아니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존재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세포다. 사명을 지켜야 한다' 등 주기적으로 사상교육을 받는 이들은 인간에 대한 복종성이 그 어떤 리플리컨트보다 강한 특징이 있다.
K는 사건을 담당하면서 일부 반란군들이 인간처럼 생식(reproduce)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흥미로워했지만, 점차 수사를 진행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특히 복제인간에게 기억을 주입시켜 주는 'memory maker', '애나'와 대화를 하면서 자신이 블레이드 러너가 아닌 실제 '인간 리플리컨트'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한다.
애나는 '진실된 기억일수록 오히려 불완전하다'며 자신이 살펴본 K의 기억이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도 떠나가는 K의 등 뒤로 '예술가란 작품 속에 스스로를 조금씩 넣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K는 사건 기록과 자신의 기억을 되살려 아버지라 믿었던 데커드를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생식(reproduce) 능력을 쟁취하기 위해 무자비한 공격을 일삼는 AI 회사 타이렐 일당을 만난다. 그리고 인간 리플리컨트를 내세워 반란을 시도하는 해방군 조직 우두머리까지 만난다.
그리고 '애나'가 진짜 인간 리플리컨트이고, 'K'는 '애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평범한 복제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로부터 받았다고 믿는 목각 인형, 꿋꿋이 견뎌내며 이겨냈던 고아원 생활, 이 모든 기억들이 진짜 인간 리플리컨트였던 '애나'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K'에게 주입시킨 가짜 기억인 것을 알게 된 순간이다. 그리고 K는 큰 부상을 입어 죽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부분의 합이 전체가 되지 않는 것처럼, 인간다운 것을 모두 합친다고 인간이 되지는 않는다. 인간의 모든 특성들을 한데 모사하여 모아둔다고 해도 우리는 인간답다는 말을 쓰지는 않는다. 복제인간 회장인 월레스, 그리고 인간에 대항하는 반란군 우두머리 모두 가장 인간다운 것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을 준비하지만 그저 한정된 지구라는 공간에서 더 높은 위치를 점하기 위해 욕심을 발현하는 것에 불과해 보였다. 실제 월레스, 반란군 두목 모두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여전히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질문은 남지만, 그래도 가장 인간성에 가까웠던 것은 조이와 사랑을 나누는 K였다. 조이는 혼자 사는 남자를 위해 만들어진 홀로그램 AI인데, K가 잠깐의 조작을 거쳐 실제 인간처럼 움직이는 자유를 부여받게 된 유일무이한 홀로그램이다. 조이는 현실의 사람과 합쳐지면서 K와 사랑을 나눈다. 이 순간만큼은 K가 가장 활기가 넘쳐 보였다. 물론 인류, 더 나아가 스스로의 인생을 탐색하는 여정은 헛되게 돌아간 것, 그 과정에서 조이는 사망한 것이 음울한 부분이지만 말이다.
영화는 경계인이 느끼는 주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출생의 비밀을 스스로 찾아가면서 결국은 운명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부조리함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하는 구조가 영화의 압권이었다고 생각한다.
진짜이든, 가짜이든 주체성을 이용해 만들어낸 모든 기억은 그나마 향기가 나고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사실이 다가왔다. 기억은 또 변하고 또 흐릿해지기 마련이지만 기억이 지닌 유한성, 유일성만이 꼭 지켜내야만 하는 가치라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