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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Aug 01. 2019

싸리버섯 찌개

음식에 대한 기억

 밖은 꽤 쌀쌀한 가을 아침이다. 가을 들며 아버지가 새로 바르신 창호지에 걸러진 뽀얀 햇살이 밥상에 둘러앉은 식구들 이마 위로 비친다. 아침밥을 하기 위해 불을 넉넉히 지핀 덕에 방바닥은 뜨끈하다. 어른과 아이가 모두 둘러앉는 밥상이라 일고여덟 살 무렵의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야 상 높이에 맞다. 밥 먹는 동안 뜨끈한 방바닥을 견디느라 다리를 자주 바꿔 앉아야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싸리버섯과 가을 호박을 넣은 찌개가 오른 맛있는 밥상이다.


 싸리버섯 찌개에는 산에서 나는 싸리버섯과, 울타리에서 자라는 호박과, 가을이 되어 붉어진 고추가 들어 간다. 내가 싸리버섯을 좋아한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식감이 좋아서였다. 꼬들꼬들 탱탱해서 오독오독 씹는 맛이 참 좋았다. 호박은 애호박이 아니라 애호박과 늙은 호박의 중간쯤 되어서 맛이 깊고 들큼했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는 대신 붉은 고추를 어슷어슷 썰어 넣어 매콤한 맛도 있지만 흰색, 초록, 빨강으로 색도 예뻤다. 들큼하고 구수한 국물에 자작자작 잠긴 하얀 싸리버섯을 입에 넣고 오래 오독오독 씹으며, 창호지에 걸러진 햇살을 흡족한 마음으로 바라봤던 것이 내가 기억하는 가장 맛있는 밥상이다. 


 싸리 빗자루를 거꾸로 세운 모양이래서 이름 붙여진 싸리버섯은 활엽수와 침엽수가 어우러진 숲속에서 자란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해발 천 미터가 넘는 높은 산의 중턱이었기 때문에 산에서 나는 음식 재료가 흔했다. 버섯은 산에서 나는 대표적인 음식 재료이다. 그 산은 송이가 많이 나기로 유명해서 가을이면 갓 딴 송이로 구이를 해 먹는 호사도 부렸지만, 산에서도 송이는 귀했다. 반면에 싸리버섯은 흔했다. 아니 어른들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서인지 가을이 들 무렵부터 싸리버섯 찌개가 자주 밥상에 올랐다.     


 싸리버섯 찌개가 밥상에 자주 올라오던 계절의 어느 오후, 산에 다녀오신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신다. 방문 앞 툇마루에 여남은 개의 송이가 키대로 나란나란 뉘여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수확량이 흡족하신 듯 내게 말 하신다.

“어느 거 묵을래?”

한참 바라보다 나는 서너 번째쯤의 송이 하나를 가리킨다. 아버지는 내가 가리킨 송이를 얇게 저며 프라이팬에 구워 주신다. 얇게 저민 송이가 살짝 익어 소나무 향이 입안 가득 번진다. 툇마루의 송이 대열 제일 끝에는 갓이 활짝 펴진 송이가 있다. 갓이 펴진 송이를 먹는 방법은 따로 있다. 송이를 결대로 찢고 배추의 노란 속도 결대로 찢어서 된장을 조금 풀어 국을 끓여 먹는다. 송이의 향이 밴 송이배춧국 한 그릇을 먹고 나면 가을이 넉넉했다.    

 가을 한 철 즐겨 먹던 버섯 밥상은 오래 가지 못했다. 열 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도시로 이주했고 나는 그렇게 도시 사람이 되었다. 도시로 옮겨 살게 된 후 나는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산에서 살던 때와는 음식 재료도 맛도 모두 달랐지만, 같은 재료인데도 그 흔하고 귀함의 정도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명 어른들이 흔하게 난다던 싸리버섯은 더이상 우리 집 밥상에 오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싸리버섯이 맛있는 음식 재료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흔하지는 않아도 가을이 깊을 무렵엔 가끔 맛보던 송이버섯이 소고기보다 더 비싸고 귀한 음식 재료라는 사실은 내게 충격이었다. 버섯을 보는 눈이 어두워 못 캐 못 먹을 수는 있어도, 돈을 주고 사 먹는 음식 재료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싸리버섯 찌개와 송이배춧국은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음식이 되었다. 


 여태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음식을 먹었다. 잠깐 만난 사람도 있고 오래 만나는 사람도 있다. 내게서 잊혀진 사람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만, 만나고 싶어도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한 번 맛보고는 다시 찾지 않는 음식도 많지만, 먹고 싶어도 다시는 먹지 못하는 음식도 있다. 


 내 유년의 밥상은 떠나오고는 다시 가 보지 못한 그 산골에서의 밥상이었고, 그 밥상에 오른 싸리버섯 찌개와 송이배춧국은 다시 만날 수 없어 그립고 그리운 내 할머니의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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