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꽃은 분홍색입니다
늦가을에 김장 채소를 모두 수확하고 난 다음 밭을 둘러보면 마음이 허전해진다. 지난 계절 동안 밭을 가득 메우던 작물은 사라지고 텅 빈 밭만 그대로이고, 발 디디기도 무서우리만치 무성하던 풀들도 누렇게 말라 있다. 작물이든 풀이든 그렇게 맹렬히 이어가던 생명의 숨들이 잦아들었다는 생각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물론, 겨울을 이기고 새봄에 아린 맛으로 찾아올 마늘과 양파가 땅속에 몸을 숨기고 있기는 하지만, 겨울 몇 달 찾을 일이 없는 밭이라 생각하면 돌아보고 또 돌아보게 된다.
겨울은 언제나 길다. 눈 내리고 바람 불어 꽁꽁 언 날이 며칠씩이나 계속되는 동안 하루에도 몇 번, 겨울에 하얗게 덮여있을 밭을 생각한다. 텃밭 농사를 시작하고부터 맞는 겨울은, 내가 산골 아이였던 그 산속 마을에서의 겨울과 같은 느낌을 들게 하였다. 여름과 가을 동안 수확한 작물들을 그때그때 빻거나 말리거나 소금물에 담그거나 꽁꽁 싸매는 방법을 이용하여 최대한 오래 보관할 수 있게 저장한다. 김장까지 끝내고 나면 말 그대로 칩거가 시작된다. 봄, 여름, 가을 동안 부지런히 장만하여 저장한 식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빼 먹으며 고요히 겨울을 난다.
그 산골의 밭 가에는 피마자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지금의 밭 가에는 모과나무와 탱자나무가 한 그루씩 있다. 모과는 원래 못 생기기로 유명한 과일이지만 병충해 약을 전혀 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울퉁불퉁 더 못생긴 모양으로 자란다. 가을이 익어갈 즈음 밭에 갈 때면 입구에 선 모과나무에 모과가 얼마나 달렸나 보다가 당연하다는 듯 ‘모과가 정말로 못생겼다!’ 하며 히히 웃기도 한다. 벌레가 많이 파먹은 모과는 땅에 떨어지기도 해서 늦은 가을 즈음 밭 가에는 마치 돌덩이가 구른 듯 모과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모과나무는 늘 그런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봄인가 하늘을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모과나무에 핀 꽃을 보고 새삼 놀랐다. 모과나무의 꽃은 예상외로 (실은 예상해본 적이 없었다) 고운 분홍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덩이처럼 자라는 모과와는 달리 꽃송이는 작고 앙증맞고 예뻤다.
울퉁불퉁 못생긴 모과만, 땅에 덜어져 돌멩이처럼 구르는 모과만 생각했다. 그런데 작고 여린 연분홍 모과 꽃잎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제멋대로 생긴 샛노란 모과가 매달려 있던 가을의 모과나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새봄,
분홍빛 모과 꽃을 보며 지난가을을 반성한다.
모과는 모과니까 못생겼다고
모과가 모과답게 못생겼다고
새봄,
모과 꽃을 마주한 반성은
지내온 내 게으름에 대한 반성이다
꽃의 향기를 몸속 가득 간직한 모과를
대강 보아온 내 히히거림에 대한 반성이다.
모과 꽃을 본 놀람에, 건너편에 물끄러미 선 탱자나무에게도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4월 말, 탱자나무에는 흰 꽃이 폈다. 흰 꽃 가운데 콩알보다 작은 탱자도 달렸다. 4월 탱자나무는 반 뼘쯤의 새순을 키워낸다. 새로 난 것은 언제나 연하고 보드랍다. 새로 난 가시도 가시답지 않게 말랑말랑 부드럽다. 올가을쯤에는 이 보드라운 가시도 찔리면 피가 날 정도로 딱딱한 가시가 되어있겠지. 새로 난 탱자 가시를 자꾸만 만져 본다.
울퉁불퉁 못생긴 모과는 제 몸속 깊은 향기를 담아 두었다가 나무 가득히 분홍빛 꽃을 피워내고,
다가서면 찌르겠다고 딱딱하게 굴던 탱자나무는 제 몸을 잘 추슬렀다가 새봄이 되면 연두빛 보드라운 새 가시를 길러 낸다.
ps. 모과청 만드는 일도 빼먹지 말아야 하는 저장 일과 중의 하나이다. 모과청을 만들 때 탱자를 몇 개 같이 썰어 넣어주면 향과 맛이 더 좋아진다. 식물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꼭 그것들을 먹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 것은 무슨 반전 스토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