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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Jan 05. 2023

박인로의 가사를 이야기 하다

<권주가>1, 일조(一朝)에 죽고 나면 어느 날에 다시 놀며

 <권주가(勸酒歌)>는 말 그대로 ‘술 권하는 노래’이다. 어떤 마음일 때 술을 권할까? 술을 권하려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사백여 년 전 조선 중기 사람 박인로는 기가 막히는 내용을 담아 술 권하는 노래를 가사 작품으로 남겼다. 그가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이런 말로 술을 권한다면 도저히 거절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니다, 술 먹는 세계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권하는 말에 매혹당할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젊은 날은 해지듯이 저물어 가고 복숭아꽃은 어지러이 떨어져 취한 눈앞에 흩날리니

구름도 없는 하늘에서 붉은 비가 쏟아지는 듯

이 아름다운 경치와 보기 드문 광경을 무엇에 비하리

이처럼 꽃 피는 좋은 날에 아니 놀고 어찌하리

하루아침에 죽고 나면 어느 날에 다시 놀며

깊은 산 키 큰 소나무 아래까지 어느 벗이 찾아와 또 한잔 권할는지     


  술자리 환경이 참으로 찬란하고 애달프다. 날은 저물어 가고 인생의 봄날도 저물어 가는데, 복숭아 꽃잎은 붉은 비 오듯 떨어진다. 떨어지는 꽃잎이 내려앉는 곳은 하필이면 취한 얼굴 위다. 생각만 해도 아득해진다. 술자리 환경만으로도 충분히 술맛이 오를 듯한데 화자는 우리 삶의 끝에 놓인 죽음을 불러일으켜 다시 한번 술을 권한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우리 삶이 어느 아침 허무하게 끝난다면 꽃비 떨어지는 찬란한 봄날에 술 먹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말로 쐐기를 박는다. 게다가 죽어 산에 묻히고 나면 벗이 있다한들 그 깊숙한 산속까지 일부러 찾아와 술을 권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즐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석숭이 죽을 때 무엇을 가져갈 수 있었으며

유령의 무덤 위에 술을 뿌린들 죽은 그에게 닿을 수 없으니 

아무렴

모두가 다 그렇게 될 인생이니 살았을 때 놀자 하노라.     


 옛날 중국 진나라 때 대표적인 부자로 매우 화려한 집을 짓고 살았다는 석숭(石崇)도 죽을 때에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었다. 역시 중국 진나라 사람 유령(劉伶)은 술꾼으로 매우 유명했지만 죽고 난 뒤 그의 무덤 위에 아무리 술을 뿌린들 유령이 술을 먹을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다 그렇게 될 인생이니 살아 있을 때, 이렇게 찬란한 봄날에 술 먹고 놀자고 권한다.



진시황 한무제도 남들처럼 죽었거든

시골의 가난한 선비가 어떤 좋은 약 얻어먹고

적송자같이 오래 살 수 있으리

인간 칠십 세는 예전부터 드물거늘

몇백 세 살 것이라고 저같이 분주하리

영예와 치욕은 나란하고 부귀도 나와 무관하니

살아서 마시는 술 한 잔, 그 아니 괜찮은가

이 술 한 잔 아니면 이 근심 걱정 어이하리     


 진시황제의 불로장생이라는 꿈은 참으로 허망했다. 먹으면 죽지 않는 불사약(不死藥)을 찾아오라고 그 많은 사람들을 나라 밖으로까지 내몰았지만 진시황도 결국 남들처럼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한나라의 전성기를 영위한 황제 무제(武帝) 역시 남들처럼 죽어갔다. 전설로만 존재하는 적송자(赤松子)처럼 신선이 아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다는 말이다. 게다가 영예와 치욕은 늘 붙어 다니고 부귀도 자신과는 상관없다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고 토로한다. 삶은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도 근심과 걱정은 살수록 더해가니 술 한잔으로 잊자는 것이다. 사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삶의 무게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결국 박인로가 <권주가>에서 하고 싶은 말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고 한번 죽으면 다시는 더 살 수 없다는 유한한 우리의 삶에 대한 것이다. 그 누구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 즉, 정해진 끝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라는 인식이 <권주가>에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덧붙여 그런 우리의 삶에는 근심과 걱정이 존재하고, 영예로운 일도 있지만 치욕스러운 일도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박인로는 임진왜란이 계속되는 7년 동안 전장에서 싸웠으니 많은 죽음을 보았을 것이다. 무관(武官)으로 말직만 전전하며 크게 쓰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함에 언제나 자신을 ‘버려졌다’고 인식했던 사람이었다. 인간 삶의 한계를 경험하고 그것으로 인한 근심 걱정, 영욕과 치욕을 잊는 일은 오직 술 먹는 일이라고 거듭 말하는 것이 <권주가>에 담은 뜻이었다. 


 그런 까닭에 <권주가>는 유학자의 당위성을 내세워 ‘유림전(儒林傳)’과 같이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후손들이 발간하고 추간한 『노계선생문집(蘆溪先生文集)』에는 배제 되었다. 다만, 영의정까지 지낸 한음 이덕형의 후손이 이덕형과 박인로의 교유를 회상하며 발간한 『영양역증(永陽歷贈)』이라는 이름의 문집에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사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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