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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Oct 30. 2023

아주 심기

 안에서 기른 모종을 밖인 밭에 제대로 심는 것이 아주 심기이다. 한 달 전 요즘 말로 전원이라고 하는, 시골에 내집을 마련하여 이사했다. 시골을 벗어나 도시 사람으로 산지 50년 만에 다시 시골에 살게 된 것이다.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태어나 자라는 장소 역시 아이가 선택할 수 없다. 나는 내 선택에 의해서가 아닌 채 시골에서 태어나 10살까지 시골 아이로 살았다. 그리곤 역시 내 선택에 의해서가 아닌 채 도시 사람이 되어야 했다.     


 10살이라는 나이는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누워있던 갓난 아이가 일어나 앉고, 걸을 수 있게 되고, 말을 배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되고, 집 밖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고, 글자를 깨우치고, 학교라는 곳에서 더 멀리 살던 친구들도 알게 되고, 혼자 버스를 탈 수 있게 되고, 학교 생활이 익숙해진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의 시간 말이다. 

    

 내가 10살이 될 때까지, 할머니 아버지 엄마 오빠 나이던 가족에 동생이 생기고, 또 동생이 생기고, 또또 동생이 생겼다. 나는 언니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인지 나의 기억에는 엄마랑 나란히 누워잔 기억이 한 번도 없다. 물론 내 기억 이전에는 분명히 있었던 일이었겠지만 말이다.    

  

 옆방은, 쉽게 열 수 없는 엄마의 방이었다. 물론 기억이라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이겠지만, 내가 처음 그 옆방에 들어갔던 것은 막내 동생이 태어나던 날 할머니의 심부름으로 고구마를 갖다 드리러 옆방 문을 열 수 있었을 때로 남아있다. 조금은 조심스럽게 열었던 그 방엔 출산을 준비해서 그런지 병풍이 검게 드리워 있고 병풍 뒤 엄마의 말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놓고 가라”     


 하지만 10년은 산 아래 그 마을에 길들여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도시에서 근무하며 어쩌다 한 번 다녀가시는 아버지 기다림과 산 속 마을이라 일찍 찾아드는 어둠이 무서웠지만, 나는 그 산을 뛰어다니며 나무와 풀과 시냇물에 충분히 길들여져 버렸다. 그 산 아래 마을을 떠나 도시로 온지 7~8년쯤 지난 고등학교 시절 그 마을에 대한 향수병으로 사춘기를 보냈을 정도였다. 

    

 도시로 이주한 이후 50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충분히 도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시골와서 비교하며 생각해 보니, 없는 것이 참 많지만 그래서 오히려 안전하고 안락하고 보호될 수 있는 집인 아파트 아닌 거주 공간은 생각지도 않고 몇 십년을 살았다. 아주 당연히 그랬다.  


        아파트 강아지 자두


 그랬지만 ‘당신이 어디에서 태어나고 자랐는지를 말한다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다’는 책 속의 글귀처럼, 나는 산골에서 태어나고 산골에서 자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잊고 살다가 나이가 좀 들고부터는 어린 시절의 환경을 그리게 되었다. 그 10년은 정서적 기반이 충분히 갖춰질 만한 아니 길들여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막연하지만 점점 커지는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텃밭이었다. 산 입구 텃밭을 마련하여 흙을 일구고 작물을 심고 거두며, 잡초라고 불리는 들꽃과 때마다 날아드는 흰나비 노랑나비와 어울리고 산새 소리를 귀에 담으며 보냈다. 그렇게 결핍이 해소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시골과 도시라는 간극을 좁히는, 아주 심기를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텃밭 방풍나물에 고인 빗물

  

 그러다 어느날 ‘지금이다’라는 신호가 왔다. 나는 그 확실한 신호를 모른척 하고 싶지 않았다. 살던 아파트를 파는 일보다는 옮겨 가 붙박이로 살 집을 찾는 일에 더 매진했고, 운명처럼 내집을 찾았다. 기쁘고 벅찼고 설레고 두려웠고 좀 막막했다.  


    

다시 시골 살이


 그리고 한 달이 흐른 지금, 아주 심기가 잘 되도록 노력 중이지만, 도시 사람으로 산 50년이라는 시간의 더께가 매우 단단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다시 시골에서 새 땅에 익숙해지려는 몸살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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