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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Oct 19. 2021

햇빛과 바람으로 기르다

들깨를 수확하다

일부러 심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밭 귀퉁이에 멀쩡히 자라는 녀석들을 뽑아버릴 수도 없었다. 봄마다 들깨는 씨를 뿌리지 않아도 꼭 몇 그루가 밭 여기저기에서 자라기 시작한다.    


돌보지 않는 것들은 더 빨리 자란다. 상추밭 부추밭 잡초들과 씨름하는 사이, 봄은 여름으로 접어들었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동안 녀석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적당하게 자란 깻잎을 따다 먹으며 당연하다고도 생각했다. 내 밭에 난 작물이니까.    



햇빛을 마주하고 자란 깻잎의 뒷면은 보랏빛이다. 오전에 밭에 나가면 깻잎의 보랏빛 뒷면에 채 마르지 않은 물방울 몇 개가 달려있기도 했다.     


여름은 맹렬한 햇빛과 더 맹렬한 비바람을 만들었다. 한차례 태풍이 지나간 뒤 밭에 나가보면 녀석들은 겸연쩍은 듯 지난밤에 맞은 비의 습기를 말리고 있었다.     


웃자란 것들은 센 비바람에 쉬이 쓰러진다. 밭일 끝내고 옷의 흙을 탈탈 털며 돌아서려다, 몇 포기씩 서로 묶어 주었다. 바람에도 비에도 다시는 쓰러지지 말라고, 무엇에든 의지하면 살 수는 있다고 중얼거리면서.    


몇 차례 비와 센 바람이 지나면 날이 서늘해진다. 그사이 말라 버석거리는 녀석들의 몸피에 깨알이 알알이 도드라졌다. 일부러 심은 것이 아니라 무렴했지만 멀쩡히 다 자라 깨알을 품은 녀석들을 보며 이것도 내 밭의 작물이라 올 때 마다 눈길을 준 것은 나였다고, 비바람 견디라고 서로 묶어 준 것도 나라고.     


                             거뭇하게 알이 영근 들깨가 가을볕을 받고 있다


비닐을 넓게 깔고 들깨 단을 펼쳐놓아 가을볕에 며칠 더 말린다. 들깨 송이며 줄기가 거멓게 마르면 들장대로 녀석들의 대가리를 마구 내리친다. 운동회날 주머니 터뜨리기하는 것처럼 낱알들이 마구 튀며 떨어져 내린다. 떨어진 낱알들을 주워 모아 위에서 아래로 우르르 떨어트리며 검불과 티를 날리는 작업을 몇 차례 되풀이한다. 가을바람에 날리는 티와 함께 속이 빈 쭉정이 몇 알 흙 위로 떨어져 간다.     


흙으로 간 낱알에 눈길 주는 동안 서툰 농부의 염치없는 한 해가 다 간다 .

어느새 늦가을 아니 초겨울로 접어드는 빈 밭, 바람이 몸을 틀며 비켜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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