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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Jul 13. 2020

코로나19, 대학

2020년 1학기

 마스크를 쓰고 조금 가쁜 호흡으로 1층 현관에 도착한다. 이젠 반드시 들고 다녀야 하는 또 하나의 강의 필수품인 노트북이 든 가방까지 두 개의 가방을 간이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열화상 카메라 앞에 서서 전자 신분증을 갖다 댄다. 삑!! 소리에 이어 “됐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엘리베이터에 탄다. 엘리베이터 안은 나 혼자이고, 버튼엔 항균 필름이 붙여져 있다. 이젠 익숙하다. 연구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지만 역시 사람의 흔적이 없다. 벽에 붙여진 벤치에 누군가 챙겨가지 않은 책 두 권은 몇 달째 그 모습 그대로다. 

 오전 화상 강의를 하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 문을 열면 적막한 복도엔 창으로 들어온 햇빛만이 가득하다. 복도를 가득 채운 햇빛을 한참 바라보자니 그 위로 바삐 움직이던 학생들의 발걸음이 겹쳐 보이는 듯하다. 손을 씻고 컵라면을 끓일 물을 받으러 복도 정수기에 간다. 강의 직전 물 한잔 먹으러 정수기 앞으로 가려다가 정수기 앞에 몰려선 학생들에 물 먹기를 포기하거나 그 옆 자판기에서 생수를 사 먹던 생각이 난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정수기 앞은 언제나 텅 비어있고, 나는 차례를 기다리거나 자판기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다 그렇겠지만, 내 직업의 특성은 누가 대신할 수 있거나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강의할 지는 오롯이 나의 책임이고 의무이며, 강좌 하나에 마흔 명의 학생들이 내 말을 들으려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바이러스를 더 조심했다. 연구실에 나와서 실시간 화상 강의를 진행하지만, 점심 때에도 매일 이용하던 학교 식당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커피머신, 포트, 전자레인지, 냉장고, 그리고 캡슐 커피, 컵라면, 즉석밥, 간단한 반찬을 준비해와 연구실에서 혼자 해결했다. 집과 학교를 차로 오가는 일 외에는 그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오후 강의를 마치고 나오니 복도엔 여전히 햇빛만이 노랗게 변한 채 누워있다. 또 그 위로 학생들의 발목과 그들이 신었던 운동화들이 겹친다. 하지만 다시 보면 텅 빈 복도와 닫힌 강의실 문, 그 안에 들어찬 어둠. 몇몇 강의실에서는 학생 없이 강의하는 교수자들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기도 한다.

 화상 강의, 한 화면에 열다섯, 스물쯤, 수강생들 얼굴이 우표만 하게 모여 있다. 얼굴을 다 비추는 수강생도 있었지만, 처음엔 마스크를 썼거나, 머리꼭지만 보이거나 심지어는 방의 창문에 걸린 블라인드, 천장의 형광등만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랬다.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이었다. 강의실이 아닌 방에서 화면을 보며 강의를 들을 것이라고 그 누구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엔 모두가 다 당황했고 어색했다. 더구나 이건 잠깐만의 특별한 상황이고, 몇 주 지나면 원래 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신입생은 더구나 그랬다. 신입생으로만 구성된 강의를 하며 저들은 대학을 어떤 곳으로 인식할까 생각이 들었다. 아직 한 번도 앉아보지 못한 강의실과 의자를 상상할까 싶었다.


 그렇게 다음을 예측 못 하는 시간들이 흘렀다. 몇 주 지나면 나아진다든가, 더워지면 사라진다든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종강에 이르렀다. 이젠 어쩌면 이 방법이 더 익숙해진 것도 같다. 종강 날, 코로나19가 괜찮아지고 우리 모두 학교에 나오게 되면 직접 보게 연구실로 한 번은 찾아와 달라는 말을 했다. 화면 속이나마 최대한 웃는 얼굴로 2020년 1학기 마지막 강의를 끝냈다. 하지만 마음은 슬펐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한 학기를 같이 보낸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올까.


 대학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코로나19가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게 했다. 대학은 지식만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전엔 학문을 익히려고 학문을 전달하려고 오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모두를 직접 만날 수 없게 되니 이제야 대학은 소통의 공간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학문이라는 것을 매개로 먼저 안 사람과 그것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소통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학기는 어쩔 수 없이 지식만 전달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오늘 강의가 끝났다. 남은 일들을 처리하니 오후 6시가 넘었다. 문을 열고 나오니 복도는 형광등 일부를 끈 탓인지 어둑신하다. 역시나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1층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학교 건물들을 돌아본다. ‘이 많은 건물들은 누구를 위한 공간이란 말인가?’

건물들을 둘러싼 나무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봄바람에 꽃비가 날리고 장마가 시작될 때까지, 캠퍼스는 조용하고 수많은 강의실을 지닌 건물들은 대부분 여전히 비어있다.     


 문득 햇빛 아래 오직 혼자인 주인공이 나오던 오래전에 봤던 영화 ‘I am legend'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단 한 번뿐인, 잊히지 않을, 2020년 1학기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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