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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Oct 12. 2020

엄마 치유

상처받은 어린시절의 기억을 안고사는 엄마들의 치유를 위하여

줄라이 <치유, 진짜 나를 찾게 된 순간>을 읽고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외국의 심리학자가 쓴 책이라고 생각했다. 작가 이름이 줄라이여서 참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서야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여성이며 줄라이는 필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추측과는 전혀 다르게 작가는 심리학자가 아니라 통번역사로 활동하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이며, 이 책은 그녀가 결혼과 육아를 통해 자신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 상처를 치유한 경험을 담담히 풀어놓은 에세이이다. 자신을 지극히 평범하다고 말한 그녀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는 나에게 눈물과 웃음과 감동과 치유를 선물해 주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무능했으며 어머니는 냉정하고 화를 감당하지 못하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남편과 세상에 대한 분노를 자식들에게 쏟아 부었는데 그 대상은 주로 삼남매 중 둘째딸이었던 저자에게로 향했다.     

 하루는 내일이 소풍이었는데 아버지가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한테 김밥 재료를 사게 돈을 좀 달라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엄마는 화를 벌컥 내며 ‘왜 나한테 돈을 달라고 하느냐? 가장인 너희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라’고 하시며 돈을 주지 않았다. 엄마에게는 분명히 돈이 있었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분노가 뼈에 사무쳤기 떄문에 가정의 행복을 위한 어떤 행동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힘이 들어도,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남에게 털어 놓거나 손을 내밀지 않았던 것은. 나는 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친구들이 나를 불쌍한 눈으로 보는게 싫었다. 하지만 가장 큰 두려움은 외면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였다. 

 안정적인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거절당하는 것이나 외면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 않다. 심리사회적 발달단계를 연구한 심리학자 에릭슨에 따르면 태어나서 1년간 아이들은 부모 혹은 주변인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통해 신뢰감을 형성시킨다. 그러나 이 시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면 불신감이 형성되므로 이 시기에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신뢰를 바탕으로 생후 1년이 지난 아이들은 자신의 주변 환경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이 때 아이들은 애착대상(주로 부모님)을 안전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면 다시 안전기반으로 돌아와 위로와 위안을 받고 다시 탐색에 나서기를 반복한다. 따라서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부모와의 애착과 사랑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에게 거절당하는 경험이 계속되면 타인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는 것 또한 매우 어렵게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믿을 수 없는데 누굴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힘이 들어도 남에게 털어놓지 않은 가장 큰 두려움은 외면에 대한 공포였다는 작가의 이야기에서 나는 동질감을 느꼈다. 


 우리집의 어려운 경제 사정이나 종잡을 수 없는 아버지의 화에 대해 가까운 사람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자존심상하기도 했지만 더 큰 두려움은 상대방이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 떠나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사이가 어색해지거나 소원해지면 어느 순간부터 내가 버림받기 전에 먼저 연락을 끊곤 했다. 마치 도마뱀이 위험을 느끼면 자신의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듯이. 그러나 이런 패턴은 오히려 나에게 더 큰 아픔을 안겨주었다. 스스로도 이런 방법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상황을 인정하고 아픔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는데 나는 반대로 상황을 왜곡해서 인식하며 아무일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이런 나의 잘못된 문제해결방식은 나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그때의 나는 아픔을 볼 용기가 없었다.

 언제가 청소년상담센터에 지원해서 면접을 본적이 있었다. 면접관은 나의 나에게 왜 청소년상담사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나의 청소년기를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아버지와의 불화, 학업 스트레스, 그리고 이런 나의 마음을 어디에도 꺼내놓을 수 없어 힘들어하던 시절에 대해. 하지만 만약 그때 내가 단 한사람에게라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담을 받으며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조언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면 나의 유년시절은 그렇게 까지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믿을만한 어른이 나에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주었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어둠속에서 헤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청소년아이들을 상담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믿을만한 어른이 되어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똑같은 상처로 아파하고 있을 부모님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싶었다. 


 때로는 내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몸이 아플 때 우리는 병원에 가서 증상에 대해 설명한다. 배가 아프다고 이야기하면 의사선생님은 배 어느쪽이 아픈지, 통증은 어느정도인지, 콕콕 쑤시듯이 아픈것이지 꽉 막히듯이 아픈것인지 등등에 대해 자세히 묻는다. 그리고 환자는 그에 맞는 자신의 상태를 소상히 이야기 한다. 그러면 의사선생님은 알맞은 처방을 내려주신다. 마음도 몸과 똑같다. 상담사에게 지금 나의 심리상태가 우울한지, 화가났는지, 불안한지를 알려주면 상담사는 적적한 반응을 통해 내담자(상담받는 사람)와 상담을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감정의 원인을 알고 치유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나의 심리상태를 알고 꺼내어 보는 것이다. 몸이 아픈데 괜찮다고 하면서 병원에 가지 않으면 병을 키우게 된다. 마음의 병도 똑같다. 손에 가시가 박혀 아플 때 가시를 빼내는 것이 무서워 밴드만 붙여둔다고 아픔이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마음의 가시도 모른척 한다고 해서 저절로 빠지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몸의 병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마음의 병을 이야기하는 데에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나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두렵고 그런 내가 정상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상담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도 상담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상담센터에 방문하던날 무척 떨리고 긴장이 되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떤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까 혼자 수백번을 고민했었다. 하지만 정작 상담이 시작된 후에는 마치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듯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내 안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쌓여 있었는지 나도 몰랐다. 내가 이런 작은 것들도 기억하고 있었구나 놀랄 정도로 과거의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내 입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상담을 하면서 펑펑 울기도 하고 작게 웃기도 하고 뭉클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나의 감정들이 안전한 상담실안에서 조심스레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속에서 나의 상처를 만나고 조금씩 치료해 줄 수 있었다. 물론 꼭 상담만이 답은 아니다. 산책을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글을 쓰는것도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떤 시간이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 그 또한 치유의 시간이라 생각한다.

 작가에게는 육아가 바로 그런 치유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던 간에,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 육아란 어찌 보면 어린 시절의 자신과 다시 만나고 그 때 입었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완전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다.(중략) 육아는 내면의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돌보고 그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다시없는 기회다. 끈질긴 성찰과 노력을 통해 과거와 화해한다면 인생의 후반부를 완전히 어른으로 시작할 수 있다. 엄마의 길에 들어선 여성들이 이 시기를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이 불행했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시기는 과거를 치유하고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므로.

 물론 작가가 단번에 과거를 이해하고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도 남들보다 오래 애벌레  시기를 거쳤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하마터면 날개도 펴지 못한 채 번데기로 남아있을 뻔했다고. 하지만 그녀는 나비가 되었고 그 첫걸음으로 용서를 이야기 하였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용서는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다. 과거를 용서해야 지금의 나도 받아들일 수 있다. 머릿속에서 무한정 돌아가는 옛날이야기에서 벗어나려면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야한다. 그것이 나를 위한 길이고, 아이를 위한 길이다.

 죽음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박사는 자신의 자서전인 <생의 수레바퀴>에서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고난과 모든 악몽, 신이 내린 벌처럼 보이는 모든 시련은 실제로는 신의 선물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것들은 성장의 기회이며, 성장이야말로 삶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신의 선물’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이 길고 험난했던 나의 애벌레로서의 시간이 이제는 밑거름이 되어, 과거의 나와 같이 내면의 상처로 아파하는 엄마들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오르도록 돕는 작은 날갯짓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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