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마주한 인간의 가장 솔직한 얼굴
얼마 전 한국에 오주간 다녀왔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며,
언제나처럼 “다음엔 더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고 인사하고 돌아왔습니다.
의대 동기들은 제게 특별한 존재입니다.
육년 동안 같은 공간에서 울고 웃으며,
가족보다 더 깊이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지요.
그 중에서도 나이 차가 스무 살 가까이 나는 형님 같은 동기가 있습니다.
그분은 제 고민을 조용히 들어주시던,
인생의 선배이자 마음의 멘토였습니다.
몇 달 전, 그 형님께서 췌장암 진단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간까지 전이된 상태로요.
항암 치료 중이며,
형님이 근무하던 병원에서는 후임자를 급히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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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가장 따뜻한 사람,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의사였던 형님이…
말기암이라니요.
형님은 예전에 미국에 주재원으로 계셨을 때
“미국 남부 여행을 꼭 같이 하자”고 약속하셨는데,
이제는 그 약속이 더는 지켜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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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서 저는 수많은 환자들의 병을 마주했지만,
막상 가까운 사람의 질병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 태어나는 게 처음이고, 죽는 것도 처음이구나.”
그 단순한 진리를 다시 깨달았습니다.
급한 마음에 일주일이라도 시간을 내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형님을 만나러 가는 길,
수없이 울다가 또 울음을 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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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항암으로 머리카락이 빠져 모자를 쓰고 계셨지만
여전히 밝은 미소로 저를 맞이하셨습니다.
“오랜만이다. 너 목소리 들으니까 기운 난다.”
그 말에, 꾹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습니다.
울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형님 앞에서 어린 동생처럼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렸습니다.
“형님, 지금까지 감사했고… 앞으로도 계속 감사할 거예요.”
형님은 웃으며 대답하셨습니다.
“두렵지 않으면 이상한 거야.
그래도 괜찮다. 이렇게 또 보니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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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사개월이 지났습니다.
형님의 암은 다행히 첫 항암에 잘 반응하고 있습니다.
2개월 후 재평가를 거쳐 2차 항암을 준비 중입니다.
형님은 소화기 내과 의사라
스스로의 병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무섭고, 더 담담합니다.
“두렵지 않으면 이상한 거 아닌가?”
그 말이 요즘 제 마음에도 자꾸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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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병원에서 믿을 만한 종양내과 의사와 함께
형님 케이스를 검토했습니다.
현재 사용 중인 항암제가 잘 듣고 있으니
계속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새로운 치료를 시도하기엔
이득보다 위험이 크다는 이야기였죠.
그 말을 형님께 전하며,
마음속에선 ‘혹시 실망하실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형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네가 다 고민했을 거 알아.
고맙다. 이렇게 목소리 들으니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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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형님은 밤마다 항암 부작용으로 손발이 저려
잠을 못 이루실 때가 많다고 합니다.
형수님이 매일 30분씩 손발을 주물러주셔야
겨우 잠이 든다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저렸습니다.
동생으로서, 의사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게 이렇게 괴로울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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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여전히 의연합니다.
그리고 저는 매일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형님, 두렵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만,
그래도 형님이라면 잘 버텨내실 거라 믿습니다.
우리 다시 낚지볶음을 먹으러 갑시다.
그 자리에서 또 웃으면서 옛날 이야기를 하게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바보 같은 동생은
그 믿음을 글로 남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