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밭에서 본 얼굴, 그리고 늦은 미안함

그때 어른이었던 나는 왜 침묵했을까

by 참울타리

10여 년 전 봄, 조지아의 딸기 농장을 찾았습니다.

직접 딸기를 따서 먹는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참 쪼그려 앉아 수확 중이던 제 앞쪽으로

한 가족이 다가왔습니다.

남자와 중년의 여성, 그리고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남자는 제가 단골로 다니던 자동차 정비소 사장님이었습니다.

저는 반갑게 인사하려다

잠시 멈칫했습니다.

그 옆의 여자분과 아이는

제가 알던 사장님의 가족이 아니었거든요.

그의 가족은 모두 한국에 있었으니까요.


아이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봄날의 햇살 아래,

보라빛 벨벳 드레스를 입은 아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장님은 저를 보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습니다.



그때 저는

굳이 누군가의 사생활을 들춰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칠지만 성실한 사람”이라 믿었고,

그의 샵에 계속 차를 맡겼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가 나이를 먹고 다른 일을 해볼까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죠.

그저 또 하나의 세월의 흐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차 문제로 그 샵을 찾았을 때

사장님이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불법 체류 신분이었기에,

“이제는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셨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미성년자인 의붓딸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해왔고,

수사가 시작되자 한국으로 도망가려다

공항에서 체포되어 감옥에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거칠지만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차를 잘 고쳐주는 정직한 사장이라고 믿었던 그 시간들.

그 믿음으로 내가 그 사람의 비즈니스를 도왔고,

그 돈이 결국 한 아이를 짓밟은 가해자에게 힘을 실어준 꼴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10년 전 딸기밭에서 마주쳤던 그 아이의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던 그늘진 얼굴.

그때 내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다고 느꼈다면,

조금만 더 다가가 물어봤다면,

그 아이의 지옥 같은 세월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했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비슷한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사회보장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노인 환자들 중

욕창이 심하고, 위생이 엉망인 분들이 있습니다.

가족들이 돌보는 척하지만,

그들의 연금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신고를 해도

법은 너무 멀고,

변화는 더디기만 합니다.


“살아 있다는 이유로

그분이 누군가의 생계 수단이 되어버린 현실.”

그건 돌봄이 아니라 착취입니다.



딸기밭에서 봤던 그 아이는

그 남자의 오랜 동거녀의 딸이자,

결국 피해자였습니다.

경제적으로 그에게 의존하고 있었던 그 아이는

세상에 어디로 흘러갔을까요.


지금이라도 그 아이가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기를,

도움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이건 어쩌면,

10년 전 그때의 나를 향한 사과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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