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라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라면
중년의 한국분 한 분이 응급실로 오셨습니다.
B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변과 간암이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간 기능은 거의 다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듣자 하니, 다음 주 월요일부터 재택 호스피스를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복수가 너무 차서,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답답하다고 하시며
결국 응급실로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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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간경변 환자의 모습은
아무리 많이 봐도 마음이 아프고, 때로는 충격적입니다.
노랗다 못해 갈색빛이 도는 피부,
터져버린 모세혈관 자리에 점상출혈이 가득한 팔과 얼굴,
복수로 단단하게 부풀어 오른 배,
그리고 지나치게 빠져버린 살 때문에
움푹 들어간 관자놀이와 눈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담관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작은아버지의 마지막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이 다시 밀려오며
환자분과 가족들에게 어떤 말을 건넸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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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분은 본인도 곧 세상을 떠날 걸 알고 계셨습니다.
“복수만이라도 좀 빼달라”
그 부탁이 너무 간절했습니다.
간 기능이 너무 저하되어 복수천자를 하다
출혈로 돌아가실 수도 있었지만,
저는 그분의 숨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바늘을 꽂고 복수가 서서히 빠져나오는 동안,
그의 눈빛에는 “아직 살아있다” 는 미묘한 안도감이 잠시 스쳤습니다.
의학적으로는 큰 변화가 아니지만,
그 짧은 시간만큼은 고통보다 평온이 이긴 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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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를 빼내는 동안
저는 오래전 세상을 떠난 분들이 떠올랐습니다.
작은아버지, 형님,
그리고 제가 돌보았던 수많은 환자들.
언젠가부터 저는 “죽음에 단단해졌다”고 믿었지만,
그건 오만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마주할 때마다
저는 여전히 무너지고, 아픕니다.
아마 앞으로도 수많은 ‘작은아버지들’을 만나야
조금은 이 상처가 아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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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가는 길, 너무 고통 없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기억으로 남겨지니까요.”
저는 속으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분의 기억 속에,
그의 마지막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드렸던 사람으로 남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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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리터가 넘는 복수를 빼내고
그분은 다시 퇴원하셨습니다.
호스피스 병원을 추천드렸지만
오늘이 아드님의 생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집에 가서 가족들과 같이 있고 싶어요.”
저는 웃으며 말씀드렸습니다.
“네, 꼭 맛있는 거 드시고 아드님 생일 축하해 주세요.”
오늘 그분이 세상을 떠나시더라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마지막 웃음을 나눌 수 있다면—
그건 그분의 삶이 끝나기 전에 맞이한
가장 따뜻한 기적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