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요.
86세의 할머니였습니다.
삼일 전부터 제가 돌보기 시작한 환자분이었습니다.
평소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적당한 체중과 활동적인 생활 습관 덕분에
지병 없이 건강하게 지내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갑작스럽게 황달이 진행되어 입원하셨습니다.
CT 검사 결과, 암으로 의심되는 종양이 발견되었고
조직검사에서는 췌장암이 의심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담즙 정체로 인한 황달을 완화하기 위해
담관 스텐트 삽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대신 배액관을 삽입했으나 배액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피부는 점점 더 노래지고,
암으로 인한 단백질 손실 탓에
몸 곳곳에 붓기가 생겼습니다.
⸻
수술적 치료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외과와 상의했습니다.
옵션으로 나온 것은 Whipple 수술 —
췌장, 담관, 담낭, 위의 일부를 절제하는
아주 큰 수술이었습니다.
코로나로 면회가 제한된 시기,
80대의 어머니와 60대의 아들은
전화로 앞으로의 방향을 의논했습니다.
아들: “어머니, 제가 수술에 대해 좀 알아봤는데요…
아주 큰 수술이고, 경험 많은 센터에서나 가능한 경우가 많대요.
해도 예후가 좋진 않다고 합니다.”
어머니: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아들: “저는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할게요.”
어머니: “수술해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다면,
굳이 하고 싶진 않구나.”
그 대화 속에서
삶에 대한 애착보다 더 깊은 의연함이 느껴졌습니다.
‘가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의 평온함이었습니다.
⸻
호스피스 미팅을 열었습니다.
가족들은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며
마지막까지 어머니가 편안히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배액관이 잘 고정되지 않아 걱정하던 가족들은
한 번 더 시술을 시도하길 원했습니다.
“할머니, 가족분들이 배액관을 다시 고정하길 원하시는데
하시겠어요? 전체적인 예후에는 큰 영향은 없지만,
배액관이 빠질 가능성이 있어서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하지만 시술은 이번에도
커다란 종양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
다음 날, 마지막 회진을 위해 병실을 찾았습니다.
“어제 시술이 잘 안 돼서 아쉽네요.
할머니, 지금 기분은 어떠세요?”
그 말을 듣자 할머니는 울컥하며 제 손을 잡으셨습니다.
나: “어제 아드님, 따님을 처음 뵈었는데
정말 할머니를 사랑하는 게 느껴졌어요.
86세시잖아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은 좀 일찍, 어떤 분은 늦게 부르시는데…
할머니 삶을 돌아보면 참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저도 언젠가 할머니 나이가 되었을 때
그렇게 떠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할머니: “맞아요,
나는 길고 행복한 삶을 살았어요.
그래도 막상 죽음이 다가오니까… 무섭네요.”
나: “무섭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요.
신도 우리가 태어날 때를 미리 알려주시지 않듯,
떠날 때도 알 수 없잖아요.
다만 저는,
할머니가 마지막 순간까지 너무 고통스럽지 않길 바랄 뿐이에요.”
할머니의 가느다란 손끝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습니다.
마스크와 페이스쉴드 너머로
할머니의 눈빛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할머니: “정말 고마워요. 사랑합니다.”
나: “저도 고맙습니다.”
병실을 나서며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누가 볼까 싶어 서둘러 눈가를 닦았지만,
그 따뜻한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누군가와의 마지막 인사를 이렇게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