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병실에서 배운 인간의 존엄
며칠 전,
새벽 시간에 환자 두 분이 restraint(신체 억제)에 묶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비영어권의 할머니들이셨습니다.
한 분은 심장 스트레스 검사를 앞두고 자정 이후 금식 중이었는데,
너무 목이 말라서 싱크대에 물을 마시러 가셨다가
간호사 호출로 시큐리티가 오고, 결국 묶이게 된 케이스였습니다.
아이패드 통역기를 들고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당시 상황을 설명하셨습니다.
섬망도, 치매도 전혀 아닌 분이었습니다.
다른 한 분 역시 비슷했습니다.
두 분 모두, 담당 스태프가 통역기를 사용했냐고 물으니
“아니요”라고 답하셨습니다.
제가 근무하지 않던 시간이었지만,
종종 ‘간단한 이야기니까 굳이 통역 안 해도 되겠지’ 하고 넘어가는 경우를 봐왔기에
이 일도 그런 무심함 속에서 벌어진 일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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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는 병원은 이민자 환자가 많은 곳입니다.
가끔 한국 환자분들도 만나게 되지요.
언어가 통한다는 이유만으로, 저는 ‘그분들의 ‘대변자’가 됩니다.
한 번은 뇌졸중으로 입원한 한국 환자분이
가족 연락이 끊겨 몇 달째 병원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치 탐문 수사하듯 정보를 모아
구글 어스까지 동원해 가족을 찾아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가 통한다는 건 때로는 또 다른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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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골절 수술을 받은 한국 아주머니가 재활병원 입원을 원하셨습니다.
물리치료사는 “독립 보행이 가능하니 집으로 퇴원 가능하다”고 판단했죠.
그런데 아주머니는 저를 붙잡고 말하셨습니다.
“선생님, 한국말 하시잖아요.
재활병원 좀 들어가게 빽 좀 써주세요.”
헉, 순간 말이 막혔습니다.
제가 “거동이 괜찮으셔서 기준에 해당이 안 된다”고 설명드렸더니,
금세 ‘못 믿을 한국 의사’가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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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췌장암으로 수술받은 한국 아저씨의 넋두리를 들었습니다.
큰 수술이라 제가 외과의 곁에서 직접 통역하며
성심껏 설명을 드렸는데,
오늘은 불평을 쏟아놓으셨습니다.
“한국에서는 의사가 직접 상처도 보고, 드레싱도 해줬는데
여긴 의사 얼굴도 못 봐요.”
아저씨가 오해하신 겁니다.
미국에선 외과의가 아닌 **PA(Physician Assistant)**가 매일 상처를 확인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통역 없이, 설명 없이 검사가 진행되니
‘무시당했다’는 감정이 남았던 겁니다.
“돈을 그렇게 내는데, 이게 무슨 서비스예요?”
그 한마디가 마음을 찔렀습니다.
보험이 없어도 병원은 대부분 비용을 탕감해 주지만,
그분은 ‘돈을 내고 있으니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한국식 의료 시스템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머무르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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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지만,
때로는 그 감정의 무게가 너무 커서
**감정적으로 소진(drain)**될 때가 많습니다.
한국 병원과 미국 병원,
둘 다 경험해 본 입장에서 보면
장단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민자 환자분들이
미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한국식 사고방식으로 의료 서비스를 기대합니다.
“의사가 알아서 다 해주겠지.”
하지만 이곳에서는 권리는 요구해야만 생깁니다.
묻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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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통역기를 끌고 병실에 들어갑니다.
언어 장벽 때문에 억제대에 묶여버린 환자,
억울하고 두려워 눈물 흘리던 그 할머니를 떠올리면서요.
적어도 제가 있는 이 병원은
통역기를 쓰고,
수간호사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고,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민자의 나라에서 환자의 존엄을 지키는 일은
결국 ‘언어’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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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존엄이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