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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너머의 진심

우리는 언제쯤 인종의 그림자를 넘어설 수 있을까

by 참울타리

26세의 미군 흑인 청년이 폐혈전(Pulmonary Embolism)으로 입원했습니다.

혈전 제거술을 받은 뒤, 혈액응고제 치료를 받고 있었죠.


오늘은 그가 심한 가슴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급히 병실로 가서 산소포화도와 활력징후를 확인했습니다.

숨이 약간 가쁘긴 했지만, 수치는 안정적이었습니다.


저는 임상적인 상황을 설명하며

그가 느끼는 통증이 수술 후 흔히 있을 수 있는 증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소리쳤습니다.


“내가 13살짜리 백인 여자애가 아니라서

아무도 나한테 신경 안 쓰는 거잖아!”


그리고는 분노를 터뜨리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저는 차분히 말했습니다.


“Sir, I understand your frustration.

But could you please watch your language?”


그러자 병상 옆에 있던 그의 어머니가

저에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우리 아들이 이런 말을 하게 만든 게 누구라고 생각해요?”


순간 병실이 싸늘하게 얼어붙었습니다.



그 청년은 말을 이어갔습니다.


“너 같은 사람들은 가족이랑 웃으며 보낼 때

난 이역만리에서 나라를 위해 고생했어.”


그 말에,

그가 얼마나 억눌린 상처와 외로움을 품고 있는지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

그 분노의 방향이

‘치유하려는 사람’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저는 조용히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추가 스캔이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원하신다면 시행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틀 만에 다시 조영제를 사용하는 것은

신장에 큰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모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통증 조절제를 조금 늘려드리고 병실을 나왔습니다.



복도를 걸으며 여러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는 젊고, 아프고, 분노한 사람이었습니다.

의사 앞에서 욕을 내뱉었지만,

그 속에는 아마도 **“나를 믿어달라”**는 절박한 외침이 숨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불신의 벽이 얼마나 견고한지,

그 벽을 넘어 진심이 닿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했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이 껍데기뿐인 인종의 장벽을

진심으로 넘어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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