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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쟁의 기록

조지아 병동에서 다시 본 인간의 얼굴들

by 참울타리

조지아는 락다운을 일찍 푼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습니다. 하루 확진자 수가 3,000명을 넘습니다. 병원은 포화 상태입니다. 코비드 병동은 매일 늘어나고, 이런 추세라면 elective surgery(선택적 수술)는 곧 중단될지도 모릅니다.


나이대도 확실히 젊어졌습니다. 오늘만 해도 2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한 환자들이 입원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가볍게 지나간다지만, 이곳 병동의 젊은 환자들은 하루하루가 고통입니다. 누군가의 방종을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대가로 치르고 있다는 말이 이렇게 현실적으로 다가온 적은 없습니다.


혈장치료는 그래도 부작용이 적고, 환자들이 기관삽관 없이 버틸 수 있게 돕는 치료입니다. 하지만 이 치료는 메이요클리닉 등록 연구의 일부라, 동의서 작성부터 등록까지 긴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40대 아주머니 한 분은 혈장치료를 거부했습니다.

“내 몸에 코로나가 많은데, 다른 사람 코로나까지 받기 싫어요.”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이었지만, 치료의 본질을 설명드렸습니다. “바이러스를 받는 게 아니라, 회복된 사람의 항체를 받는 겁니다. 남한이 북한에 밀릴 때 유엔군이 참전해 돕듯이요.” 그래도 아주머니는 끝내 고개를 저었습니다. 네 시간 뒤, 치료도 거부한 채 퇴원을 요구했습니다.

예—우린 이런 분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다른 40대 흑인 아주머니는 물었습니다.

“이 치료, 인종에 따라 효과가 다르지 않나요?”

터스키기 매독 연구의 그림자가 아직도 남아 있는 사회입니다. 의료에 대한 불신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지요.


60대 아주머니는 달랐습니다.

“나 이거 받고 나으면, 내 혈장은 다른 사람한테 줄 수 있을까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그래, 이런 분들이 아직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네요.


70대 러시아 할머니는 양성 진단을 받았다고 하셨지만, 병원 검사 두 번은 음성이었습니다. 리서치 등록을 위해 탐정처럼 자료를 찾아야 했습니다.

“검사 어디서 받으셨어요?”

“가까운 데서요.”

“결과는요?”

“이메일로 받았어요.”

“그럼 캡처해서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그걸 몰라요.”

결국 제가 직접 폰을 받아 구글 번역기까지 돌려 결과를 영어로 출력했습니다. 그걸 근거로 등록이 승인돼, 할머니는 결국 혈장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전 쉬프트 의사는 “결과 있으면 가져오세요”로 끝났지만, 저는 할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게 오늘 하루 중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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