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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세의 죽음, 81세의 생존 — 내가 다시 배운 생명

팬데믹의 병동에서, 의사로서의 오만을 내려놓기까지

by 참울타리

49세 흑인 남성 환자분이셨습니다.

비만이 꽤 심하셨고, 베가스에서 출장을 왔다가 코로나에 감염되어 입원하신 분입니다.

저는 다른 병원에 근무 중에도 이분의 차트를 가끔 열어보곤 했습니다.

며칠 전 다시 그 병동에 돌아왔을 때,

고농도의 산소를 달고 여전히 싸우고 계신 그분을 또 만나게 되었습니다.


“3주 전에 저 봤는데 기억하시겠어요?”

“워낙 많은 의사를 봐서 잘 기억나진 않아요.”

“저는 아저씨 잘 기억하는 걸요. 아직 버티고 계셔서 기뻐요.”


처음 며칠은 조금씩 호전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오일째 되는 날,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다시 찍은 흉부 사진에는 폐에 구멍이 난 흔적 — 거대한 기흉이 보였습니다.

양압기를 오래 달고 있었고, 염증으로 폐 조직이 견디지 못한 겁니다.


“지금은 기관삽관 없이 줄 수 있는 산소량의 한계치예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이 산소 없이는 단 몇 분도 버티기 힘드세요.”


3주 전, 그와 기관삽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는 “받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중환자실 팀은 현실을 설명했습니다.

“이 상태로는 벤틸레이터를 떼실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의 누나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평소에,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살고 싶지 않다고 했었어요.”

결국, 누나와의 페이스타임 도중

그는 조용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날 같은 병동의 81세 환자는

코로나로 인해 폐색전증이 있었지만, 백신 덕분에 금세 회복해 퇴원하셨습니다.

“아버지, 백신 맞으신 덕분에 이렇게 퇴원하시는 거예요.”

그 말에 따님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하루 동안 산 자와 죽은 자를 동시에 본 하루였습니다.

49세와 81세, 두 사람의 대조적인 운명 앞에서

가슴 한켠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예전에는 백신을 거부하고 병원에 오는 사람들을 보면

‘이건 자업자득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하지만 그건 의사로서의 오만이었습니다.


그들도 두려웠고,

그들에겐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저, 그들이 덜 고통스럽기를 바라는 사람일 뿐입니다.


의학을 조금 안다고, 생명을 다룬다고 해서

삶과 죽음의 무게를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도 나는 그 사실을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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