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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의 닥터콜 — 96세 할머니와의 짧은 만남

하늘 위에서도 누군가는 누군가를 살리고 있었다

by 참울타리

9월 13일, 비행의 마지막 두 시간을 남기고 기내에 “의사를 찾습니다”라는 방송이 울렸다.

긴 비행, 와인 한잔에 몸을 맡기려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그 말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96세 할머니가 따님들과 함께 오랜만에 조국을 방문하던 중, 갑자기 오한과 호흡곤란을 호소하셨다고 했다. 좁은 통로를 따라 승무원을 따라가자 할머니는 창가에 기대어 앉아 계셨다.


혈압과 체온을 확인했다. 약간의 고혈압은 있었지만 당장 약을 더 드릴 상황은 아니었고, 체온도 정상. 혈당 역시 약간 높았을 뿐 안정적이었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제 말을 잘 듣지 못하셨다. 엔진 소음에 묻혀 말 한마디 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숨소리는 고르고, 맥박도 일정했다.

“산소포화도 체크 좀 부탁드립니다.”

승무원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기계는 없습니다…”


기내에 의료 장비가 없다는 사실이 순간 낯설게 다가왔다. 다행히 할머니는 청색증 같은 증상은 보이지 않았다. 따님이 덧붙였다.

“비행기 타기 전에 마약성 진통제를 드셨어요.”


거동이 가능하고 검사상 큰 이상이 없어, 승무원에게 삼십 분마다 바이탈을 체크해 달라 부탁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좌석에 앉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게 영화 속에서만 보던 닥터콜이구나.’


별일 아닌 상황이라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혹시라도 바이탈이 흔들리면 이 비행기를 착륙시켜야 하나…’

수백 명의 생명과 연결된 결정의 무게가 스쳐갔다.


그날, 나는 하늘 위에서도 의사였다.

그리고 그 경험은, 잊을 수 없는 긴장과 배움의 순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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