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배운 기도의 온기
제가 수련을 받았던 병원은 미국의 한 카운티 병원이었습니다.
인종을 가릴 것 없이 사회 저소득층 환자들이 마지막 보루처럼 찾아오는 곳이었죠.
때로는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병을 키운 끝에야 입원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왜 나는 한국의 모교병원을 두고 이 절망의 병동에서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언어와 문화의 벽, 매일이 전쟁 같았습니다.
그 무렵, 기다리던 첫 한국 휴가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학창 시절을 함께한 반려견 ‘뽀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스카이프 화면 너머로 백내장으로 흐려진 눈, 그럼에도 제 목소리에
갸우뚱하며 고개를 돌리던 작은 생명.
그날, 저는 병원 당직실에서 사람도 환자도 잊고 펑펑 울었습니다.
그리움에 사무쳤던 첫 휴가의 소망은 그렇게 함께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체중이 급격히 줄고 폐렴으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미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제게 세상이 또 한 번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련의였습니다.
내가 울어도, 병동에는 여전히 나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날 담당했던 중년의 흑인 여성 환자분이 제 얼굴을 유심히 보시더니
조용히 물었습니다.
“닥터 X, 얼굴에 걱정이 있어 보여요. 무슨 일 있나요?”
“한국에 계신 아버지가 편찮으세요. 체중이 줄고 폐렴이 심하셔서요.”
“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XX이세요.”
“참 예쁜 이름이네요. 오늘 밤, 닥터 아버지를 위해 기도할게요.”
입원 중인 자신도 힘들 텐데,
얼굴도 모르는 담당 의사의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그 말에
저는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감정이 북받쳐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담담히 감사 인사를 전하며 조심스레 그녀를 안았습니다.
그 온기, 그 순간의 체온이 아직도 제 몸은 기억합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폐렴 치료를 잘 받으시고,
첫 휴가 때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뵐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 곁에서,
이해받지 못해도 진심으로 다가가야 하는 이유를.
진심은 언어를 초월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된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