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백이는 사실 ‘사랑’이라는 본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그를 육백이라고 부른다.
아버지의 보청기 두 개를 물어뜯는 바람에,
새로 사는 데만 육백만 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이름이 자연스레 정해졌다.
웃겼지만, 어딘가 꼭 맞는 이름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보다 육백이라는 이름이,
이 아이에겐 더 솔직하게 어울린다.
사랑은 늘 약간의 손해와 함께 찾아오니까.
아침마다 육백이는 침대 밑에서 기어나와
하품을 하고, 꼬리를 한 번 흔든다.
그 단순한 몸짓만으로 세상이 조금 덜 피곤해진다.
좋으면 온몸으로 다가오고,
싫으면 등을 돌린다.
가끔 혼을 내면 잠시 서성이다가
내 무릎 가까이 와서 살짝 기대 앉는다.
그게 ‘미안해’라는 말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사람들은 점점 말을 더 잘하지만,
그 말속엔 마음이 덜 담긴다.
반대로 육백이는 말을 못 하지만,
숨소리 하나, 눈빛 하나로 다 전한다.
그 단순한 정직함이
요즘은 부럽다.
밤이 깊어지면 육백이는 내 발치로 와 눕는다.
작은 체온이 느껴진다.
그 온기가 하루의 끝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하루 동안 내가 마주한 수많은 체온들이 떠오른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손끝,
아직 따뜻한 이별의 온기,
그 모든 생명이 하나의 리듬으로 이어져 있다는 걸,
이 작은 존재가 다시 일깨워준다.
육백이는 이름보다 훨씬 큰 존재다.
그의 본명처럼,
그 자체로 ‘사랑’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랑에게 사랑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