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의사 면허를 모두 가진 내과의사다.
요즘은 다양한 이유로 미국으로 이주하는 한국 의사들이 조금씩 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수는 많지 않다.
나는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공중보건의로 복무한 뒤, 잠깐의 인턴 과정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와 내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지금은 조지아 주에서 병원 의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의료를 비교한다고 하면, 이제는 내 직접적인 한국 임상 경험이 의대 시절과 인턴 기간에 한정되어 있어 완전한 1:1 비교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의 시스템은 너무나 다르고, 그 차이가 극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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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 빠르고 가까운, 그러나 ‘시스템’이 약한 나라
한국의 의료는 전국민의료보험(NHI)을 기반으로 누구나 전문의에게 곧바로 접근할 수 있는 구조다.
환자는 언제든 내과든, 정형외과든, 피부과든 원하면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접근성은 세계적으로도 놀라운 수준이다.
하지만 그만큼 ‘시스템’의 정교함이 부족하다.
의사의 진료는 개인의 성향과 학회 활동, 그리고 최신 지식을 얼마나 흡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운이 좋으면 교과서적이고 evidence-based한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경험과 감(感)에 의존한 진료가 이뤄진다.
한국의 의료는 빠르지만 표준화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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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느리지만 철저한 나라
미국의 의료는 정반대다.
진료 하나하나가 매뉴얼과 프로토콜에 따라 움직인다.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간단한 검사 하나를 위해서도 guideline을 따져야 하고,
모든 결정은 “evidence”와 “policy”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시스템은 환자 입장에서는 느리고 답답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그 과정을 다시 분석하고, 시스템을 수정하며,
결국 다음 환자에게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만든다.
미국의 의료는 비효율적이지만, 학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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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의 속도와 구조 사이에서
불임 치료를 보면 두 나라의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한국의 불임클리닉은 공장처럼 돌아간다.
좋은 배아의 숫자, 높은 성공률, 빠른 시술 회전율이 곧 ‘성과’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궁선근증, 항인지질증후군, 면역학적 이상으로 반복 유산을 겪는 산모들은
단지 ‘실패 케이스’로만 쌓여간다.
누구도 묻지 않는다.
“이 자궁이 임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왜 같은 실패가 반복되는가?”
미국이나 일본의 일부 클리닉에서는 이런 문제를 면역학적·내분비적 요인으로 세분화해 접근한다.
폐경 치료나 혈전·면역 조절 요법을 병행하며, 실제로 반복유산을 막아내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런 치료가 “비표준”, “비급여”, 혹은 “시스템 밖의 예외”로 분류된다.
결국 치료는 환자가 아닌 숫자를 위한 치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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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숫자를 치료하는가, 사람을 치료하는가
불임클리닉의 5분 진료 안에서,
의사가 환자의 좌절과 공포, 반복된 실패 속의 절망을 충분히 공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그 짧은 시간 속에서도
“당신 잘못이 아니다”
“한 번 더 해보자, 다만 다른 길로”
이 한마디가 환자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의료의 본질은 시스템이 아니다.
그 안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서사를 함께 짊어지는 일이다.
한국의 의료는 빠르지만, 사람의 이야기를 놓치기 쉽다.
미국의 의료는 느리지만, 환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기록한다.
그리고 나는 그 두 세계의 중간에서 늘 고민한다.
“빠르되 따뜻하고, 철저하되 인간적인 의료.”
그게 내가 두 나라의 시스템을 경험하며, 여전히 포기하지 못한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