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감추게 된 시대, 그리고 여전히 남은 사랑의 온기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마음이 움직이면
이유 따윈 필요하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으로 의료봉사를 떠나기 전날 밤,
문득 여자 친구 얼굴이 보고 싶었다.
길고 먼 일정이었고, 한동안 보지 못할 거란 생각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밤,
나는 몰래 엄마 차를 빌려 타고 나왔다.
기름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달렸다.
도심을 벗어나자 창문을 스치는 공기가 달랐다.
조금은 차가웠지만, 그 속엔 설렘이 섞여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발라드가 흘러나왔고,
그 노래가 이상하게 그날의 마음을 대신해 주는 것 같았다.
도착해서는 결국 보지 못했다.
여자 친구가 화장을 안 했다며
나를 돌려보냈다.
그 순간,
나는 바보처럼 웃고 있었다.
그 밤의 바람은 차가웠지만,
마음은 오히려 따뜻했다.
그땐 그마저도 사랑이었다.
꾸밈없고, 계산도 없는,
그 시절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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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다들 조심스럽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사람들은 감정을 아낀다.
상처받기 싫고, 오해받기 싫고,
그래서 감정은 자꾸 접힌다.
좋아한다는 말을 삼키고,
대신 ‘괜찮은 사람’으로 남는 걸 택한다.
마음은 여전히 뜨겁지만,
표현은 점점 차가워진다.
⸻
젊은이들은 예전보다 훨씬
연애하기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한 번의 터치로 사람을 만나고,
메시지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
기다림 대신 즉각적인 연결,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더 외롭다.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누구와도 닿지 않는다.
사랑이 편리해진 대신,
외로움은 더 정교해졌다.
이것이 연결의 시대가 남긴 조용한 역설이다.
⸻
지금은 오히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에게서
‘사람의 냄새’, 사랑의 냄새가 난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그 단순하고 솔직한 마음.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흔들고,
섭섭하면 등을 돌린다.
감정이 정직하고, 마음이 투명하다.
나는 그 작은 존재를 보며
문득 생각한다.
어쩌면 사랑은
이토록 단순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마음을 숨기기 시작했지만,
이 녀석은 여전히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눈빛을 보며
옛날의 나를 떠올린다.
그 마음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다만 이제는,
그 마음을 꺼내 보이는 게 두려운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나는 믿는다.
사랑은 아직 우리 곁에 있다.
그저,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을 뿐이다.
그저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꺼내보이는 법을
잊어버렸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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