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의 시절, 나에게 형이 되어준 한 사람의 이야기
공중보건의사로 경기도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치과의사 형님이 계셨다.
감정의 결이 맞는 사람은 어디서든 금세 공명하게 되는 법이다.
형님과 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낯설지 않았다.
편안했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무엇보다 친형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는 형님이 참 좋았다.
긴 미국 레지던트 수련 준비 과정을 마친 뒤,
형님이 축하 저녁을 사주신 날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형님은 조심스럽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오만 원권 열 장, 5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미국 가서 힘들 텐데, 이 돈으로 맛있는 거라도 사 먹어.”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이 내 마음을 울렸다.
나는 그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형님께 받은 마음을 언젠가 꼭 되돌려드리자.’
그래서 첫째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면
작은 용돈이라도 전해드리고 싶었다.
그 후로 나는 수련을 마치고 한국에 자주 들어오게 되었고,
육개월마다 형님과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안부를 나누곤 했다.
재작년 봄, 형님의 첫째가 재수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부를 잘하던 아이였지만, 형님은 자신의 삼수 경험을 떠올리며
애틋함과 안타까움을 함께 이야기하셨다.
그날 형님의 표정에는 아버지의 복잡한 마음이 묻어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그날 아이에게 용돈을 주고 싶었지만,
아이가 재수를 하게 되면서 그 약속은 일 년 미뤄졌다.
그리고 작년 봄이었다.
평소처럼 한국행 일정을 세우고,
형님과 친구가 함께 있는 단체 카톡방에
“이번에 한국 들어가요.”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금세 반가운 답장을 보내는 친구와 달리,
형님의 카톡에는 계속 ‘1’이 사라지지 않았다.
‘가족 여행 중인가 보다. 며칠 지나면 답이 오겠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여전히 읽지 않음 표시가 남아 있었다.
불안한 마음이 들어 형님의 치과를 검색해봤다.
그런데 더 이상 같은 상호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병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전 원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새로 치과가 생겼어요. 모르고 계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누군가 “농담이에요.”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형수님이 일하는 병원에 연락을 드려
형님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1년부터 조심조심 관리하던 뇌혈관 질환이 있었다고 했다.
언제든 터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늘 긍정적이고 밝게 지내던 형님이었다.
그런데 내가 한국 오기 한 달 전,
갑작스레 쓰러지셨고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그제야 카톡 옆의 ‘1’이 왜 지워지지 않았는지 이해됐다.
응급실로 향하던 길에,
형님의 휴대전화가 어디엔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었다.
그해, 형님의 첫째 아이는 원하던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아빠의 후배가 된 셈이다.
나는 다른 친구와 함께 첫째 아이와 저녁을 먹으며
작은 봉투를 건넸다.
“엄마한테 알리지 말고, 너 필요한 데 써.”
하지만 그 친구는 참 착한 아들이었다.
그날 저녁, 형수님에게 감사 인사를 받았다.
우리만의 비밀이 들켜버린 것 같아 쑥스럽고 따뜻했다.
올해는 형님의 둘째 딸이 대학입시를 마치고 서울공대에 입학했다.
나는 형님의 첫째 아들에게 연락해 말했다.
“동생하고 같이 저녁 먹자.”
그러자 답장이 왔다.
“어머니가 두 분께 저녁을 대접하고 싶대요.”
약속을 잡고 형수님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분께 지난 2년은 정말 고난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다시 일어서야 했던 시간들.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그럼에도 형수님은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얼굴이 밝아졌다.
형의 두 자녀들은 장학금을 받으며 서울대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하실 때,
형수님의 얼굴에 환한 꽃이 피었다.
나는 조심스레 봉투를 꺼냈다.
“형수님, 둘째 입학 축하드려요.”
형수님은 한사코 사양하셨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님이 미국 가기 전에 저한테 주셨던 돈이 있었어요.
그때 마음속으로 다짐했어요.
형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꼭 작게라도 보답하고 싶다고요.
그러니까 꼭 받아주세요.”
형수님은 잠시 말이 없더니
눈시울을 살짝 붉히며 봉투를 받으셨다.
형님의 육신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누군가의 일부로, 혹은 자연의 일부로 흩어져버렸다.
하지만 형님이 세상에 남긴 마음의 빛은
여전히 나에게,
형수님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