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들은 170번의 심박, 그리고 의사가 본 생명의 윤리
한국의 시험관 시술은 성공률이 높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성공’이라는 단어에는 언제나 단서가 붙는다.
혈액검사 수치가 오르면 성공,
초음파에 임신낭이 보이면 성공.
그 순간까지만 통계에 포함된다.
그 뒤의 일 ―
심장이 멈추고, 유산이 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산모들의 이야기는
의료 데이터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의학은 그걸 ‘자연스러운 일’이라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건 자연이 아니라 시스템이 만든 일이다.
고령/고위험군 산모에서 유전적으로 이상이 없는 배아를 미리 확인하는 검사(PGT-A) 없이, 면역이나 혈전 문제를 점검하지 않은 채 일단 착상’을 목표로 하는 구조. 그건 생명을 돕는 게 아니라, 유산을 예고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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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내는 미국에서 초음파를 찍었다.
나는 시차 때문에 그 자리에 없었다.
몇 시간 뒤, 전화가 왔다.
조용한 목소리로 아내가 말했다.
“심장 뛰어요. 170회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한 문장이 귀를 울리고, 가슴 깊숙이 내려앉았다.
조금 뒤,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아내는 초음파 사진을 비춰주며 조심스레 웃었다.
화면 속의 작은 점 하나가,
규칙적으로, 또렷하게 뛰고 있었다.
그건 수치도, 통계도 아니었다.
그건 살아 있는 생명의 박동이었다.
통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새벽의 공기처럼 고요한 방 안에서,
나는 그 심장 소리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말은 없었지만, 그 순간 알았다.
이건 단순한 임신이 아니라,
우리에게 찾아온 생명의 이유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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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다르다.
임신이 아니라 출산(live birth) 으로 성공을 정의한다.
유산과 조산까지 모두 포함해,
“끝까지 태어난 생명”만 통계에 남긴다.
그래서 그들의 숫자는 낮지만,
그 숫자 안에는 거짓이 없다.
한국은 빠르고 효율적이다.
하지만 빠름은 곧 피로이고,
효율은 곧 생략이다.
의료가 생명을 다루는 이상,
생략해선 안 되는 게 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난 한국의료에 대해 변명을 해 줄 순 없다.
그 안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시스템이 얼마나 차갑게 생명을 다루는지 알고 있다.
그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된 일이다.
정말 의학은 생명을 돕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숫자를 관리하고 있는가.
의사로서 나는 그 질문 앞에서 늘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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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상은 시작일 뿐이다.
성공은 심장이 뛰고,
그 생명이 품에 안길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제 의학은 숫자가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은 생명을 기준으로 말해야 한다.
그게 진짜 성공이고,
그게 다온이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