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삶은, 서로의 냄새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건,
나와 익숙한 인종·음식·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눈을 맞출 일이 훨씬 많아진다는 뜻이다.
한국 출신 의사로서 미국의 카운티 병원에서 일할 때였다.
흑인 할머님 한 분이 입원해 계셨다.
내가 병실에 들어설 때마다,
할머니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곤 했다.
나의 치료 계획이나 방향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필요 없었다.
할머니는 그냥, 나의 마늘 냄새가 싫었다.
그녀의 얼굴엔 두려움보다 오래된 습관이 묻어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냄새가 사람의 경계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녀의 시선 앞에서, 의사로서의 전문성도 한순간 무력해졌다.
내 마늘 냄새를 싫어하는 흑인 아줌마도,
카레 냄새를 싫어하는 한국인 친구도,
결국 자신과는 다른 타인의 문화에
본능적인 이질감을 느끼는 것이리라.
얼마 뒤, 다른 한인 가정에서 인터뷰를 준비하며 지낼 때였다.
그 집 한국인 2세 아주머니는
내가 당연히 김치를 피할 것으로 생각해서
진수성찬의 빵 파티를 벌여주셨다.
하지만, 그날 나는
어머니가 해준 아삭거리는 김장김치가 몹시 먹고 싶었다.
그날의 공기에는 두려움과 자존심이 섞여 있었다.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건,
내 안의 어떤 부분을 스스로 지우는 일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알게 된 건,
많은 한인 이민자들이 이런 선택을 반복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타인에 대한 배려이자,
조금씩 자신을 지워가는 일종의 자기희생이었다.
어쩌면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빵과 김치 사이의 적당한 간극을 찾는
끝없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K-pop과 K-culture가 넘쳐나는 세대다.
내가 한국인인 걸 알면
간단한 한국어 인사를 건네거나
김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부쩍 많아졌다.
이런 세대가 올 줄 누가 알았을까.
정말, 격세지감이다.
앞으로의 세대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나는 김치를 완전히 포기할 수도,
또 김치를 싫어하는 누군가를 완전히 배려하지 않을 수도 없는,
끝없는 고민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민자의 삶이란,
빵과 김치 사이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인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서 다른 누군가의 냄새에 조금의 관용을 베풀 수 있다면,
언젠가 나의 김치 냄새도 누군가의 이해 속에 머물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