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같은 일을 하다 보면 ‘감(感)’이 생긴다.
의사에게 그 감은, 때로는 생과 사의 경계를 가늠하게 만든다.
그건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수많은 경험과 배움이 몸 안에 쌓이며 만들어진,
슬프도록 정확한 본능이다.
그리고 그 ‘감’ 중에서도
가장 섬세하고,
가장 피하고 싶은 감은
누군가의 죽음을 예감하는 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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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감의 시작은,
의대생 시절의 한 병실에서였다.
어머니의 친구 남편분이
말기 대장암으로 병원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계셨다.
아들이 영국에서 유학생으로 지내다가
임종을 지키기 위해 귀국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 속에
결국 다시 공항으로 향하려던 참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병실로 향했다.
아저씨는 교과서에서나 보던 체인-스토크 호흡(Cheyne–Stokes breathing),
그 독특한 리듬으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짧은 숨과 긴 숨 사이의 간격 속에서
삶이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는 순간 알았다.
— “지금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하고 몇 시간 뒤,
아저씨는 가족들 곁에서 마지막 숨을 고르셨다.
그날 이후,
나는 그 감을 잊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도,
그날의 호흡이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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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도 내과의사로서
나는 수많은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3년 전, 의대 동기이자 소화기내과 형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였다.
한국에 도착한 다음 날,
나는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형님은 이미 진통제를 많이 맞으셨지만
그럼에도 통증과 섬망 사이를 오가고 계셨다.
그 눈빛에는 내가 알던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환자가 아니라,
함께 술을 마시고 웃던 형님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는 의사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눈시울을 붉히며
형님의 손을 잡고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나는 형님이 머지 않았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 다음날,
나는 형님의 빈소를 찾았다.
향 냄새와 하얀 국화꽃,
그 사이에서 나는 묘하게 익숙한 공기를 느꼈다.
의사로서 수없이 마주해온 죽음의 냄새,
하지만 그날만큼은
그 냄새가 내 안 깊은 곳을 찔러왔다.
그 냄새는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렀다.
새벽의 병동을 지날 때마다,
그날의 공기가 문득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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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두 분의 환자가
마지막 돌봄 속에서 하늘로 떠나셨다.
그중 한 분에게서는
내가 의대생 시절 처음 보았던 그 체인-스토크 호흡이 다시 보였다.
퇴근을 준비하며,
나는 동료 의사에게 짧은 인계 문자를 남겼다.
“곧 돌아가실 것 같아요.”
그리고 몇 시간 뒤,
그 환자는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나에게 묻는다.
“얼마나 더 사실 것 같아요?”
나는 잠시 말을 고르고,
조용히 대답한다.
“저는 신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죽음은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는 존재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 길을 걷게 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그 마지막 길을 걸을 때,
내게 남은 이 ‘감(感)’이
누군가의 아름다운 마지막을 위해
사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신의 대리인은 아니지만,
그 뜻을 조용히 읽어내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떠날 날이 왔을 때
내 곁에 있던 누군가는
내 마지막 숨결 속에서
무엇을 느끼게 될까.
나는 그 답을 모른다.
다만,
그 순간이 조금은 평온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