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찰나.

by 참울타리

찰나의 순간이었다.

S형의 손바닥이 내 옆에 있던 N형의 얼굴에 꽂혔던 일은….


도미를 하고 나서 나는 짧게는 육 개월, 길게는 일 년에 한 번 한국을 가곤 했다.


“웬만한 한국에 있는 사람들보다 너를 더 자주 보는 것 같다.”는 불만 아닌 불만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듯 나를 진심으로 환영해 주었다.


그날은 나의 공보의 졸업 동기 모임이었다.

치과의사 형님 둘, 한의사 형님 둘, 의대 친구 하나가 모인 조촐한 자리였다.


항상 모임의 중심이 되고 싶었던 치과의사 N형은 몇 순배 돌았던 소주가 과해서였을까.

개업 때문에 늦게 자리를 찾은 S형에게 술 진도를 맞추라며 계속 타박했다.


후래자 삼배주를 외치는 N형의 깐족거림은 멈추지 않았지만, S형은 삶이 피로한 듯 별다른 대응 없이 그 말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술이 과해서였을까.

N형의 말들은 옆에 있던 동생인 내가 보기에도 이미 아슬아슬한 선을 넘고 있었고, S형의 참을성 역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에이, 정말 술 안 마실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살지….”


얼마 전 개업해 성실하게 사업을 일구어 오고 있던 S형은 이 말에 결국 폭발했다.


N형이야 페이로 일하고 있어 다음 날이 그다지 부담되지 않았겠지만, 자기 클리닉이 막 자리를 잡아가던 단계에서 과한 음주가 무리라는 걸 알고 있던 S형은 의도적으로 술을 자제하고 있었다.


나는 평소 다정다감했던 S형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을 처음 봤다.


N형에게 분노의 따귀를 날린 S형의 말이 이어졌다.


“이 자리는 J 때문에 온 거야.

앞으로 이 새끼 부를 거면 나는 부르지 마.”


주변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우리들은 형들을 말리며 확전을 경계했다.


N형은 터진 입술을 어루만지며 S형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 후 그 모임은 없어졌다.


나는 친구들 형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것보다는 각자 개별적으로 만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고, N형과는 자연스럽게 연락을 끊었다.


S형과는 매번 한국에 오면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삶의 관심사를 나누며 마음을 나눴다.


한참이 지나서였다.

N형이 만취한 채 카카오톡 보이스톡으로 나에게 연락을 해 온 일은….


N형은 내가 보고 싶다며 이번에 한국에 오면 꼭 보자고 했고, 그래서 참석한 술자리는 그의 큰 개업 성공을 축하하는 자리였으며, 나는 그 자리에서 미국에서 온 악세서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후로 나는 조용히 N형과 연락을 끊었다.

그 사람이 싫어서라기보다는 그 사람에게는 내가 자리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S형이 지병으로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갑작스럽게 S형이 응급실에 내원하게 되면서 정신없는 와중에 형의 전화기는 분실되었고, 그 사이 공보의 동기들 중 연락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S형이 돌아가신 지 한 달이나 지나서 찾은 한국이었지만,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공보의 졸업 동기들에게 연락을 했고, 다들 나의 슬픔에 공감하며 S형의 빈소를 함께 찾기도 했다.


N형에게 연락해야 하나, 그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안 좋은 감정이라도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났고, 죽음 앞에서 용서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며 N형에게 S형의 죽음을 알렸다.


애도의 표현은 없었다. 아직도 N형은 S형에게 따귀 맞은 그 술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나보고도 건강 조심하라는 의례의 인사를 남기며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다. 이제 내가 이 형에게 다시 연락할 일은 없겠구나.


유한한 삶에서 남은 사람들 중 일부는 여전히 과거에 머문 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N형도 나도 언젠가는 S형을 따라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나는 N형과 같은 작별을 원하지 않는다.


그날의 따귀는 찰나였지만, 어떤 찰나는 한 사람의 남은 시간을 끝까지 데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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