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와인은 오래도록 같은 시간을 공유해 왔다. 와인의 역사는 기원전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은유되는 제사주로서의 와인 역시 이미 이천 년이 넘는 시간을 견뎌 왔다. 그 가운데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로 대표되는 구대륙의 와인들은 올드 빈티지로 특히 이름이 높다.
올드 빈티지 와인은 일반적으로 10년 이상 숙성된 와인을 가리킨다. 포도 자체의 생생한 과실미 위에 세월을 인고하며 덧입혀진 삼차 향이 겹겹이 쌓이고, 흙과 가죽, 후추와 담배 같은 향들이 젊은 와인에서는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운 우아한 균형을 이룬다.
내 첫 와인 경험은 여느 미국 이민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파 밸리의 카베르네 소비뇽이었다. 따뜻한 태평양 기후 아래 잘 익은 포도의 진한 풍미는, 앞만 보고 달리던 당시 내 입맛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비싼 프랑스와 이탈리아 와인은 가난한 레지던트였던 내게 ‘볼드모트’ 같은 이름이었다. 존재는 알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기엔 너무 먼 세계의 단어. 그 시절의 나는 와인을 몰랐던 게 아니라, 알아버리면 초라해질까 봐 모르는 척 살았을 뿐이다.
그러다 올드 빈티지에 매료된 친구를 통해 보르도의 오래된 세월을 만났다. 과실미는 여전히 심장처럼 뛰고 있으면서도, 섬세하고 실키한 타닌이 중심을 잡고 있었다. 말 그대로 신세계를 만난 순간이었다. 이후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바롤로를 경험하며 갈망은 깊어졌다. 젊을 적 혀끝을 찌르던 날카로운 산도의 바롤로가 수십 년을 지나 완숙한 예술품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며, 나는 경탄을 넘어 경외를 느꼈다.
포도나무는 참 신기한 존재다. 같은 품종이라도 어디에 뿌리내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여기서 ‘떼루아’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토양, 배수, 기후를 아우르는 이 개념은 이민자의 삶과 닮아 있다. 한국인 이민자는 본토 사람들과 유전적으로 같지만, 언제 어디에 뿌리내렸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의 서사를 쓰게 된다.
나파의 안온한 기온은 포도나무가 큰 고난 없이 자라게 했고, 그 결과 풍부한 과실미를 얻었다. 반면 변덕스럽고 척박한 보르도에서 포도나무는 생존을 위해 뿌리를 더 깊이 뻗어야 했고, 그 처절한 선택이 강인한 숙성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나는 몇 번의 실패한 올드 빈티지를 마신 뒤에야 중요한 진실 하나를 깨달았다. 코르크를 뽑자마자 풍겨오는 시큼한 식초 냄새, 생명력을 잃고 갈색으로 바스러진 액체는 말해주었다. 모든 고난이 숙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어떤 시간은 와인을 망가뜨릴 뿐이라는 것을.
와인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척박한 환경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고난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단단한 산도와 구조감’이다. 그것이 결여된 와인은 세월 속에서 숙성이 아닌 산패의 길을 걷는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무의미한 고난은 상처만을 남기지만, 내면의 중심을 지키며 견디는 시간은 깊이를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일부러 척박함을 선택하며 자신을 학대하지도, 안온함에 취해 성장을 멈추지도 않으려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내면의 산도를 잃지 않은 채 망가지지 않고 시간을 견디는 일뿐이다.
내가 어떤 와인과 같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는 인생의 끝에 가서야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그때 내 인생의 코르크를 열었을 때, 시큼한 악취 대신 우아한 세월의 향기가 피어오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