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한 인터넷 사이트가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시네마 천국은 ‘다시 보고 싶은 영화’ 1위에 오른 적이 있다. 1980년대 말에 개봉한 이 이탈리아 영화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도 한국인들에게도 언어를 넘어서는 감동으로 오래 남아 있다.
어릴 적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토토와 알프레도 아저씨의 우정, 청년 토토의 가슴 아픈 사랑과 이별, 성공한 영화 감독이 된 토토의 고독이 먼저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키스신만을 엮어 상영하는 장면에서 오랜 시간을 돌아 지켜진 두 사람의 약속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조용히 젖어드는 감정을 느꼈다.
최근 유튜브에서 영화의 주요 장면을 편집한 영상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시간이 많이 흘러서인지 감동의 방향이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전쟁에서 전사한 아버지 대신, 토토의 엄마는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에서 남매들을 ‘살려내는 일’에 온 힘을 쏟는다. 생계는 늘 빠듯했고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 사이 토토는 마을 사람들의 손을 전전하며 자라난다. 성당에서의 아르바이트도, 영화관에서의 영사 보조 일도 토토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었다. 토토의 엄마에게 세상은 버텨야 할 현실이었지만, 아이 토토에게 세상은 아직 충분히 호기심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알프레도는 그 ‘토토’를 키운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아버지에 가까운 자리에 있던 인물이었다.
어릴 적에는 알프레도의 역할만이 크게 보였다. 토토에게 꿈을 심어 주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 준 존재라는 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보니, 토토에게는 엄마의 치열한 ‘생존’도, 알프레도의 조용한 ‘꿈’도 어느 하나 덜 중요하지 않았다. 둘은 서로 다른 결을 가졌지만, 같은 무게로 토토를 떠받치고 있었다.
엄마가 마련해 준 가정은 먹고살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이자, 토토가 현실에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바닥이었다. 그리고 알프레도가 건네준 꿈이 없었다면, 토토는 그 바닥 위에서 다른 방식으로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토토는 훗날 영화 감독으로 성공한다. 좋아하던 일을 업으로 삼아, 이른바 덕업일치를 이룬 삶이다. 그러나 그 선택의 반대편에는 적지 않은 공백이 남는다. 그는 가족과도, 알프레도와도 떨어진 채 일에 몰두하며 살아왔고, 시간은 성취로 채워진 대신 관계로는 채워지지 않았다. 곁에 오래 머무는 사람은 없었고, 젊고 아름다운 연인들만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성공했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삶을 오래 내어주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만약 토토가 시칠리아의 섬마을에 남아 영사로 살았다면, 가족과 더 가까이 지낼 수 있었을 것이고 사랑하던 사람과의 관계도 이어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대신 그 선택 아래에서는, 성공한 영화 감독으로서의 토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알프레도의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또렷해진다. 자신의 아들 같았던 토토가 시골을 떠나 도시로 향할 때, 그는 붙잡지 않았다.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도록, 오히려 등을 밀어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 선택을 끝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온전히 토토의 것으로 남겨 두었다는 사실이다.
부모 혹 친구들이나 주변의 어른들이 때로는 멘토링이라는 이름으로 조언을 건네지만, 그 말들 속에는 종종 자신의 기대나 바라는 삶의 모습이 섞여 있다. 그런 시대에 알프레도의 태도는 더욱 선명해진다. 그는 방향을 제시하되 결과를 소유하지 않았고, 가능성을 열어 주되 그 이후의 삶에 개입하지 않았다.
혹자는 토토의 삶을 세상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사랑이 결핍된 삶이라고 평가할지도 모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 결핍은, 알프레도가 열어 준 가능성 앞에서 토토 스스로 선택한 길의 일부였다. 남겨진 공백까지 포함해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선택이었기에, 그는 그 고독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삶 역시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은 언제나 찾아온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대신 선택해 주느냐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자리까지 함께 걸어와 주는 사람의 존재다. 알프레도는 끝내 토토의 삶에 깊숙이 들어서지 않았다. 다만 한 발 옆에서, 가능성이 꺼지지 않도록 불을 밝혀 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길은, 끝내 토토에게 돌려주었다.
드물지만 그래서 더 귀한, 이 시대의 알프레도였던 형님이 그리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