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내가 기억을 헤집지 않아도 기억이 저 혼자 나를 부른다. 스쳐가는 향기가, 아련한 노랫소리가, 잊고 있던 시간으로 나를 내팽개치고 무력함과 죄책감에 몸서리치게 만드는 날이 있다.
그 모든 건 놓쳐버린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되었다.
그 날, 나는 정신을 잃었다. 아니, 늘 그렇듯이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잠들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깨어나 확인한 메시지 함에는 당신의 음성 메시지가, 몇 번을 다시 걸어도 당신의 전화는 응답이 없었다. 초조했던 3일이 지나 당신을 마주하고 나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기억은 내게도 상처로 남았다.
당신 없는 삶이 마음 편하다 말하면 이기적일까. 한때는 연인의 생일이었지만 이제는 그저 네 자리 숫자에 불과한 비밀번호처럼, 많은 것들이 의미를 잃고 그저 기억인 채로 시들어 간다. 눈물이 아니면 말할 수 없던 날들도, 뒤척이며 맞던 새벽노을도, 노래 가사처럼 이제는 사라질 추억들. 더는 당신이 내 삶의 첫 번째가 아니고, 더는 당신이 그립지 않다. 그저 간혹, 상처가 욱신거릴 뿐이다. 그때 잠들지 않았더라면, 그때 당신을 만나러 갔더라면...
놓쳐버린 전화 한 통에, 당신 삶 전체에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라는 것. 그 부채의식을 이해해달라고는 하지 못한다. 다만 그게 잘못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날의 기억은 이미 나를 구성하는 한 조각이고, 기억이 부를 때마다 내 죄책감과 당신에 대한 연민도 되살아날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상흔은 쉬 사라지지 않기에.
진심으로 당신이 행복하길 빈다. 당신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다. 당신이 행복한만큼, 그보다 훨씬 더 나 역시 행복해지길 빈다. 이제 당신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그 뿐이다.
독백은 외롭다.
그냥 자고 싶은 생각만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