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새벽의 기억

그리고 신년 소망

by truefree

스무 살 무렵,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종각에 나갔다가 세시가 가까워서야 간신히 택시에 합승해서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흔치 않았던 시절이다. 할증에, 합승이니 돌아가는 거리까지 - 집에 도착하려면 한참을 더 가야 하는데 택시 요금은 이미 예상을 훌쩍 넘어서 부모님께 구원 요청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사정을 설명하고 집 앞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사 얘기를 꺼냈는데, 무슨 마음에서였는지 기사님이 씩 웃으며 말했다.


"연초부터 거짓말하고 다닐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오늘은 기분 좋게 보냅시다 우리. 계좌 번호 드릴테니까 나중에 넣어주세요."


그럴 순 없다, 그냥 가시라, 내가 내주마, 합승객까지 가세한 실랑이가 오가고, 결국 곤히 잠든 부모님을 깨워 간신히 택시비를 낼 수 있었다.


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 날 그 택시 안의 말랑말랑 했던 모습들이 잊히지 않는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어울려 주고받은 덕담과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받았던 마음들. 사람 좋게 웃던 그 기사님은 어디서 뭘 하실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이렇게 깊이 남아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은데.




올해도 어느새 마지막 날이다. 매번 그렇듯, 한 해를 아쉬워하고 새해를 기약하겠지. 나는 작년보다 더 나은 인간이었는가 - 답하려 생각해보면 항상 자신감이 사라진다. 늘 모자라고 이기적인 소인배는 아니었는지... 내일 말고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하자는 외침은 온전히 나만을 향해 있던 건 아닌지.


옛날 그 택시 기사님처럼, 문득 주위를 안온하게 하는 사람이고 싶다. 불현듯 배어나온 계산 없는 말 한 마디에도 온기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부디, 어쨌든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