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언제나처럼 회사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며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설 연휴의 달콤함에 투덜거리다 돌아오던 때였다.
"누구요? 왜? 언제?"
"우리도 잘 모르겠다, 오늘 아침에 들었어."
모든 부고에는 예고가 없다지만, 기척 없던 죽음은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황급히 퇴근해 검은 정장으로 갈아 입고 운전대를 잡았다. 가까운 친척이라 생각한 적 없었는데, 그래서 그냥 남 일처럼 볼 것 같았는데, 너무 갑작스러워서인지 마음이 요동을 친다.
큰 덩치로 씩 웃길 잘하던, 바이크와 술을 사랑하던 이모부가 회갑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심근경색 - 숫자로만 보면 특별할 것 없을 죽음이다. 설 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내고는, 일하러 간다며 집을 나선 사흘 만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그나마 가족들 얼굴 보고 가셨으니 다행이라 해야 하는 건지.
바다 건너 돌아간지 이틀 만에 되돌아온 첫째, 첫 출근이 미뤄진 둘째를 보며 어쩔 줄 모르는 인사를 나눈다. 실감이 나지 않는 탓일까, 서로의 황망함을 달래는 우리의 얼굴엔 힘없는 웃음기도 배어있었다. 상실은 당장 와 닿지 않는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기도 하고, 빈자리는 바디 블로우처럼 서서히 묵직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싸늘한 촉감의 빈소를 정리하고 화장터에 가서야, 더는 신경 쓸 일 없어 긴장이 풀어질 후에야 슬픔이 현실로 덮쳐온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듯, 버티고 서서 작은 창 너머 불길을 노려보는 사촌들의 뒷모습에 나도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
상실은 이제부터다. 꽤 오랜 시간을 시달리겠지. 부디 그 시간들이 말 못 할 괴로움이 아니기를. 서툰 위로는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하고, 그저 어깨를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맞는 장례가 아닌데도 돌아오는 길엔 유난히 마음이 어지러웠다. 타지에서의 고독사, 이모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한 때 잘 나가던 모습에 비해 초라한 일이라는 게 맞겠다. 잘 죽기는 잘 살기보다 어렵군... 내 마지막은 어떨까. 그런 생각들이 속을 바쁘게 헤집었다.
위로가 필요 없는 죽음이라면 좋겠다, 고 몇 달 전에 써두었던 글을 이제야 올린다. 아무래도 마무리는 못 할 것 같다. 남겨진 이들에게 위로가 필요 없는 죽음이라니, 악당이면 되겠군 하고 웃어본다. 그런 게 아닌데, 어쨌거나 슬픔으로 가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