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의 강매

나는 빚지고 싶지 않다

by truefree

유독 주변인에게 친절한 사람들이 있다. 사소한 일들을 기억하고, 축하할 일이 생기면 선물을 건네고, 응당 그래야만 하는 일인 듯 사람을 챙긴다. 구김 없이 사랑 많이 받고 자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로 말하자면, 무릇 사회화된 성인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기준선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인간이라 그런 모습들이 낯설다.


어쩌면 그건 자기 계발서의 부작용인지도 모르겠다. 인맥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고, 대화는 어떻게 이어야 하고... 세상 모두를 둥글게 만들려는 야심에 가득 찬 책들이 어찌나 많았는지. 아쉬울 때를 대비해 잘 해둬야 한다니, 뭐 이런 거지 같은 이야기가 다 있나 하면서도 잘 대해 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테제가 머리 속에 박혀 버린 건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가 주요 목표인 내게는 부담스럽다. 갚아야 할 빚들이 쌓여가는 느낌. 아니,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하면 불편하지 않느냔 말이다. 회식 다음날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우유라든지, 본인도 일찍 가야 하는 거 뻔히 아는데 생일이라고 저녁 같이 먹자고 한다든지, 스쳐가는 말까지 기억해뒀다가 선물로 사 온다든지 - 난 여친에게도 그렇게는 못 해봤다.




십여 년 전 겨울, 목도리를 선물 받았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은 아름답고도 슬픈 일이라, 촘촘하다가 성기다가를 반복하는 초보 티 역력한 물건을 보자니 말문이 막혀왔다. 나는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뜨개바늘과 다투며 보냈을까. 차마 '난 목도리 안 하는데?' 하고 말할 수 없어 받아 들고 온 목도리는 결국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는 숱한 물건 중 하나가 되었다.


지금은 눈을 질끈 감고서라도 거절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목이 답답한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셔츠 단추 두 개는 꼭 풀러 다니는 걸, 성장을 갖출 때도 넥타이는 하지 않는다는 걸 보고도 보지 못한 그에게 말했어야 했다.


그의 잘못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늘 썰렁해 보이는 내 목이 안타까웠을 것이고, 따뜻하게 채워주고 싶다 생각했을 것이고, 생각 끝에 손수 뜨개질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었음을 확신하는 만큼, 그가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에 도취되어 있었음을 확신한다.


모든 강요는 그렇게 이루어진다 - 무분별한 자기 확신, 그렇지 않은가?


친절도 강매될 수 있다. 몇 해를 더 살아오며 그렇게 느꼈다. 일방통행이라는 점에서는 폭력과도 같다. 그렇게 친절한 이들은 자신의 호의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나는 받은 만큼 돌려줘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고, 내가 마땅히 챙겨야 할 사람들을 챙기기도 벅찬 모자란 사람이고, 그래서 받은 것들이 쌓여가면 짐처럼 느껴진다는 걸, 그렇게 내가 느끼는 부담감을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냥, 내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 충분한 이유가 되면 안 되는 걸까? 갚지 않아도 되네, 부담 갖지 않아도 되네 하는 일방적인 이야기 말고 - 그거 결국 자기만족이지 나를 위한 건 아니지 않나.




사회성 모자란 내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해본다. 받은 대로 돌려주어야 하는 성격 - 은혜든 원한이든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게 마음 편한 나는, 빚지고 싶지 않다. 내가 챙겨야 할 이들을 내 마음이 움직일 때 챙기고 싶다. 빚에 떠밀려 갚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 나를 제발 좀 놔두시오 - 라고 좀머 씨처럼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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