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하루
주말은 보통 늦잠, 보통 생각하는 수준이 아니라 밤을 샌 사람마냥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눈을 뜨지 못한다. 친구는 대학 동기였고, 있는 듯 없는 듯 다니던 나와는 달리 발이 넓었다. 어떻게 우리가 친해지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또 다른 친구까지 셋이 잘 뭉쳐 다니던 게 어느새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둘 밖에 없는 대학 동기, 오랜 친구의 결혼식. 휴대폰 알람을 네 개나 맞춰 두고 기어이 아침에 몸을 일으킨다.
늦어도 30분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차를 버리고 뛰어가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뺄셈은 모르는지 덧셈만 하고 있는 내비게이션을, 뻥 뚫린 버스 전용 차선을 번갈아 바라본다. 제발, 시작 전에만 도착할 수 있게 해다오 - 간절함이 통했는지 15분을 남겨두고 미궁 같은 주차장에 골인. 허겁지겁 주차를 하다가 흰둥이에 또 상처를 냈다. 솟구쳐오는 짜증을 애써 외면하고 뛰듯이 걸어 간신히 축하 인사를 건넨다. 많이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밀려드는 하객들로 새 신랑과 더 길게 얘기할 수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돌아가 흰둥이의 상처를 살핀다. 계속 오라이를 외치던 주차 요원과 경보음을 듣지 못한 얼빠진 나 중 누구에게 짜증을 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관뒀다. 둘 다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오늘이 그런 날일 뿐이지.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직 신랑 신부 입장은 하지 않았다. 길게 한숨을 내쉬고 구석에 우두커니 서서 혼자 식을 지켜본다. 간신히 얼굴만 기억나는 사람들이 테이블 한 켠을 차지하고 앉아 있지만 서로 존대를 했는지 반말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10년도 더 묵은 시절 얘기를 끄집어 내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모르는 척 피하는 게 상책. 그들도 내가 누구인지 잘 기억나지 않거나, 서먹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웃사이더의 시간은 그렇게 10년 후에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혼자인 사람들이 섬처럼 듬성듬성하게 같은 영역에 모여든다. 비슷한 처지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일행인지 아닌지 고민할 만큼의 거리로 옆에 선다. 불이 켜지고 식이 끝나면 먼저 와 있는 일행을 찾아 나서거나, 혼자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겠지. 우리는 암묵적으로 서로를 빌리고, 휴대폰을 바라보며 각자의 길을 향한다.
멀리서 누군가 반가운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매일 보는 사이가 아니면 빤히 얼굴을 마주 봐도 누구인지 인식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린다. 매번 인사가 늦고, 오해도 많이 사긴 하는데, 그런데 정말 누구였더라 - 아, 또 다른 친구의 와이프다. 옆에 서 있는 친구는 아예 보지도 못했다. 미안하다, 어디 있었어?, 식당에, 애들이 이 놈은 누구냐는 눈빛인데?, 맨날 엄마 친구들만 보니까 아빤 친구 없는 줄 알아, 잘 지내셨어요?, 그대로세요, 더 예뻐지셨네요, 애들이 엄마 닮아서 예쁘네, 언제 놀러 오세요, 가까우니까 자주 좀 봐요...
아이들 밥을 먹이고 온 친구와 사는 얘기를 나눈다. 짧아진 그의 머리가 넓어진 이마만큼 어색하다. 못 만난 새 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만큼 자랐고, 친구는 전직이란 걸 했다. 어느 회사 전산실에서 혼자 슈퍼맨처럼 모든 걸 도맡아 하던 그가, 야근이 없어서 좋다며 희멀겋게 웃는다. 절벽에서 새로 시작하는 두려움은 어땠을까. 20대의 우리는 빈곤했고, 두려웠고, 불투명했지만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가능성도 있었는데... 삶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들은 때로 너무 잔혹하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잔혹함을 뒤로하고 웃어본다. 아저씨 10년쯤 후에 또 만나게 될 거니까 이번엔 잊으면 안 돼. 안녕, 안녕. 올해는 꼭 다시 보자 친구야.
피로연장 인파에 질려 그냥 가려다가, 배고픔이 새삼스레 밀려와 밥을 먹기로 한다. 혼자 밥을 먹는 건 하품 날 만큼 익숙해진 일이지만 앉을 자리가 마땅찮은 건 고역이다. 어렵사리 끼어 앉은 자리에는 하필 또 커트러리가 없어서, 초밥 코너 옆 젓가락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젓가락은 바퀴에 버금가는 발명품이라는 생각을 했다. 국물만 아니면 대충 다 집어 먹을 수 있다.
뱅글뱅글 주차장을 돌아 흰둥이를 끌고 나온다. 서울의 교통 체증은 내 기억보다 훨씬 잔인하다. 식장까지 두 시간, 다시 본가까지 한 시간 반. 올림픽대로 위에서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감상하고 있자니, 그냥 집에 돌아가 부족한 잠을 채우고 싶어 졌다.
본가는 더웠고, 정장은 불편했고, 등이 축축하도록 땀이 배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친절을 강매한다. 당신들은 땀을 흘리며 선풍기로 버티다가 아들 덥겠다고 호들갑을 떨며 에어컨을 켜는 류의 일들. 괜스레 부아가 치밀어 됐다 하고 만다. 괜찮다는데 억지로 밀어 넣는 친절의 10분의 1 정도라도 당신들에게 쓴다면 나도 부모님도 만족스러울 수 있을 텐데.
책과 TV로 시간을 보내고, 엄마 손 맛으로 또 일주일치 에너지를 충전한 뒤 집으로 향한다. 엄마가 죽으면, 다시는 이 된장찌개를 먹을 수 없겠지. 엄마의 찌개, 엄마의 손 맛 - 누군가의 말처럼. 그런 생각들이 상상된 슬픔에 현실감을 무겁게 덧 씌운다. 어디서 돈벼락이나 맞았으면 좋겠다. 몇 년 전부터 말하는 유럽 여행이나 럭셔리하게 보내드리게. 나도 며느리감 데려다 같이 가고. 나오기 전 슬쩍 채널을 돌려보니 이번 주도 로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1등으로 뽑았다.
그렇게, 보통의 하루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