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는 웁니다

그래도 장가는 제가 알아서 갈게요

by truefree
그동안 뿌리고 다닌 축의금은 회수해야 할거 아니냐?!


이 나이쯤 되면 - 그러니까, 세상에서 결혼 적령기라고 부르는 나이가 훌쩍 지나서도 혼자인 삶을 지내다 보면, 부모님의 잔소리는 대충 다 같은 내용이게 마련이다. "대체 네 짝은 있느냐", "누구네 아들은 벌써 둘째 아이를 낳았다더라" 하는 내용. 인정하긴 싫지만 우리 부모님도 어느새 옛날 사람이고, 나이마다 달성해야 할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이 놈이 어딘가 모자란 놈으로 보일까 염려가 이만 저만이 아니시다.


오늘 갑자기 걸려온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 주에 올 거지?"라는 말에서 불쑥 쓸쓸함이 느껴지면 못 내 "오늘 저녁에 갈게요."하고야 만다. 이런 훈훈함이 후회로 바뀌는 건 집에 도착하고 채 30분이 걸리지 않는다.


결혼을 위시해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온 인생 마일 스톤에 대한 압박 끝은 언제나 나의 "알아서 할게요. 그만 좀 하세요!"라는 역정으로 어색하고 섭섭하게 마무리되고야 만다.


제 인생 제가 삽니다. 알아서 한다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십대 시절에 들었던 아버지의 꾸지람은 항상 짧고 굵게, "네 인생 네가 사는 거다."였다. 짧은 저 한 마디는 다시 말해 "그러니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자꾸 이렇게 딴 짓 하다가 나중에 커서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이 살게 되어도 네가 뿌린 씨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 난 안 도와줄 거다. 나중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너도 네 선택에 응당 책임져야 한다."라는 말이고, 겉으로야 "암요 그러믄입죠." 하며 코웃음을 쳤지만 -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 속으로는 잠깐이나마 움찔하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한 10년쯤 전부터는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던 그 말을 드디어 반격의 무기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제 인생 제가 사는 거라면서요. 그냥 좀 놔두세요, 알아서 할게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내 인생 내가 사는 거'라는 말은 어느새 내 삶의 모토였다. 선택과 결과는 온전히 나의 몫이니 간섭받지 말 것, 황금률에 따라 타인의 삶에도 참견하지 말 것 - 부모님도 물론. 당신들은 이미 내게 할 만큼 다 하셨다고 생각했고, 나 역시 당신들에게 해야 할 도리는 어설프게나마 하고 있다고, 개인이 가지는 많고도 복잡한 역할 중 부모 자식으로서의 삶 이외에는 서로에게 뭐라 말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내 역정의 이유는 내 인생의 마일 스톤이 부모님이 끼어들만 한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안부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다거나, 집에 가면 밥만 먹고 잠만 잔다거나, 이번 달 조공이 늦었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생산자 무한 책임이라며?


어느 날이었던가 매번 똑같은 잔소리와 알아서 한다는 실랑이 끝에 "남들이 뭐라는 게 문제가 아니고 네가 장가 가야 우리가 우리 할 일 다 한 것 같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것이었던가, 싶었다. "네 인생 네가 사는 거다."에 비견될 만한 나의 고정 멘트는 "생산자 무한 책임이니 책임지세요."였고, 내게 그것은 웃자고 하는 농담일 뿐이었으나 부모님께는 세상에 내놓은 개체가 완성될 때까지 돌보아야 하는 무서운 책임감의 환기였을 것이다.


공부는 잘 하는지, 밖에서 사고는 안 치는지, 사회성은 원만한지, 남에게 피해는 안 주는 지, 누구에게 미움 받지는 않는지, 굽이굽이 구구절절하게도 '어디 모자란 놈 되지 않게 잘 키워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삐끗할 때면 당신들 책임을 다 하지 못했노라 스치는 바람결에도 괴로워하며 자책하셨을 것만 같다. 결혼도 안 해보고 아이도 길러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 속을 다 알기 힘들다.


개인의 삶은 분리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나와, 가족의 삶이 곧 개인의 삶이라 생각하는 부모님의 차이. 말로는 네 인생 네가 사는 거라고 하셨으면서도 한 번도 그렇게 놔둔 적 없었던 당신들의 모습이 짠한 밤이다. 다 내려두고 "진짜 네가 알아서 살아라 인마." 하셔도 괜찮았을 텐데, 어찌 한 번도 무책임해본 적 없으신지......


대체 언제까지 이 얘기를 해야 되나요?
너 장가 갈 때 까지!

더 걱정하진 않아도 되겠다 싶게 잘 살아야겠다, 다 책임감과 걱정의 표현이니 잘 받아 들여보자 다짐하지만 세상 많은 자식들이 그렇듯 작심 삼일이다. 다시 또 오늘처럼 불려갈 일이 있으면 30분이 지나지 않아 순순히 불려온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고, 다시 또 내 삶은 내거라며 역정을 내고 어색하게 집을 빠져나올 것이다. 부모님도 매번 이제 얘기 안 하겠다 하시지만 일주일을 채 못 가 다시 시작이다. 알면서 못하는 게 가족 관계의 묘미랄까, 다람쥐 쳇바퀴 돌듯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돈다.


그나저나 오늘도 누군가의 은근한 '글쎄 우리 아들/딸 내미가 이번에..'로 시작되었을 것이 분명한 자식 자랑 배틀에서 지고 돌아오신 게 틀림없다. 가만히 지켜보니 그런 날이면, 날벌레를 유인하는 퍼런 불처럼, 아들을 유인하는 쓸쓸한 목소리로 전화하시는 것 같다. 내가 갓 취업했을 무렵에는 항상 이기고 돌아와 즐거움과 고소함과 으쓱함이 가득한 밝은 목소리로 전화하실 때가 더 많았는데...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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