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 무너진다
noun
the practice of doing what other people suggest, rather than taking the lead
- Collins English Dictionary (http://www.collinsdictionary.com/dictionary/english/followship)
직장 생활 9년 차, 올해는 팀장님과 면담하는 일이 잦다. 조용히 지내는 게 모토인 만큼 팀장 면담은 연말 평가 시즌이 아니면 해본 일이 거의 없는데 올 들어 기록적인 횟수를 달성 중이다. 칭찬도 질책도 아닌 조정을 위한 면담 - 평온한 삶이 붕괴되는 소리가 화재 경보음처럼 귓가를 울린다.
나는 사람마다 허용 한도를 그려두는 편이고, 할당된 경계를 밀고 들어오는 이들은 피하며 지내왔다. 그렇게 삶이 단순했던 시절이 좋았다. 좋아지면 선을 좀 더 가깝게 긋고, 피하고 싶은 사람은 잘라내고 돌아서면 그만이었는데, 취업 후에는 상황이 조금씩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딜 가나 오지랖이 만주 벌판을 호령하고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들이 있게 마련인데, 회사에서는 잘라내고 돌아설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이 집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만 한다. 그동안은 상사 운이 꽤 좋은 편이었는데 올해 다시 또 그런 상사를 만났다. 전에 없이 강력한.
leadership보다 followship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리더 혼자 뭘 한다고. 결국 조직의 힘이란 건 구성원들이 얼마나 받쳐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소소한 불만은 덮어 두는 것이 또 동방예의지국의 미덕이라, 나 역시 되도록 리더를 따르려 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동안은 기꺼이 그럴 '마음'이 드는 사람들을 만났다. 맞다, 마음이다. followship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 한 때 서점가를 휩쓸었던 소통 광풍의 화두처럼, 마음이 움직여야 따르게 된다. 그렇게 따르는 것이 제일이고, 불만 가득한 채 끌려가는 것이 가장 하급이다. 후자는 followship이라기보다는 생활 영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휘어짐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연초 팀에 합류한 그의 일성은 '나는 옛날 사람이다'였다. 옛날 사람이라는 말이 참 함축적인데, 권위는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이런 이들은 직위와 나이로 권위를 세우려 한다. 그리고 끝없는 자기 확인이 이어진다 - 자신이 상급자임을, 고릴라 마운팅 하듯 구성원들의 순응과 복종을 통해서만 확인하는 피곤한 일들. 내가 그렇듯 너희도 나에게 응당 엎드려야 한다는 강요는 불쾌하기 그지 없다.
그렇게 열 달이 지나니 이제 실무자들이 의사 결정은 고사하고, 팀 내부에 보내는 메일 하나 스스로 쓰지 못한 채 그에게 자진해서 검토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 역시 '이러 이러한 일이 있는데 이렇게 진행하겠습니다'라는 보고에 '그걸 왜 네가 결정하느냐'는 답을 숱하게 들어왔다. 생각하지 말고 의견 내지 말고 일일이 물어보라는 뜻이겠는데, 자기 완결적인 일 처리나 업무 주도성은 말살되어야만 하겠다. 한심해지기 싫어서인지, 피 속에 흐르는 반골 기질 때문인지 나는 좀체 그렇게 바짝 엎드릴 수가 없다.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가는 게 가장 문제다. 억눌려서 속이 곪아 들어가는데 겉보기에 통일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조직이 잘 운영되고 있다 흡족해하는 큰 오해. 생각하는 힘을 잊은 구성원들로 속도는 느려지고, 분열되어 반목하는 구성원들로 조직력은 약해져 간다. 조직의 활력은 떨어져가고, 사기는 꾸준히 내리막을 걷고 있다. 결정해주고 지시 내리고 찍어 누르던 리더가 없어지면... 과연 이게 지속 가능한 조직의 모습일까?
내 followship도 그렇게 무너져간다. 마음을 다 해 따르기는 초장부터 글러 먹었고, 코뚜레에 꿰인 소 마냥 억지로 질질 끌려가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겉으로라도 숙이는 다른 구성원들과 달리 뒷걸음질을 열심히 시도해보고 있다는 정도. 반복되는 충돌과 갈등, 그의 마운팅이 불러오는 짜증 덕에 눈을 뜸과 동시에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런 일로 팀장과 마주 앉는 것도 겸연쩍기 그지 없고, 슬프면서도 '고작 일 따위'라는 미생의 대사가 비웃듯 내 머릿속을 맴돈다.
모쪼록 마음을 먼저 사로잡을 일이다. 마음이 움직이면 따르게 되고, 따르게 되면 권위가 생겨나고, 권위가 생기면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다. 이상적인 이야기 임은 알고 있으나, 내가 항상 하는 말처럼 - 저기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왜 그 곳으로 가려하지 않는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