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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Oct 09. 2023

‘왜’에 매몰되지 않는 사람들

‘무엇을, 어떻게’를 향해 나아갈 때


재한 : 거기도 그럽니까?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슨 개망나니 짓을 해도 잘 먹고 잘 살아요? 그래도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그렇죠?


무전기 너머에서 우리에게 묻는 이재한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오늘 리뷰를 할 대본집은 바로 김은희 작가의 명작 중 명작 ‘시그널’이다.   


   분명 이 대본집의 등장인물 소개를 살펴본 여러분은 내게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아니, 대본집은 등장인물 소개가 자세하다면서 이건 뭐죠?” 이렇게 말이다. 그렇다. 사실 시그널은 홈페이지보다 대본집 속 등장인물 소개가 짧다. 자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 차라리 홈페이지를 보는 게 나을 정도다. 그런 여러분께 변명하자면, 이렇게 작가마다 다른 스타일의 대본을 마주하는 것이 대본집을 읽는 매력이라 하겠다.


좌: 홈페이지 인물소개 / 우: 대본집 인물소개

   다만, 다른 대본집에 비해 다소 긴 부분이 있다면 바로 용어 정리다. 이미 드라마를 본 분이라면 알겠지만, 이 작품은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한다. 또한 재한과 해영이 주고받는 무전으로 인해 과거가 바뀌어 현재의 모습도 바뀌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 보니 용어 정리에 나온 화면기법을 알지 못하면, 대본 내용을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 부분에 조금 더 신경을 쓴 것 같다.


   아무래도 드라마 내용상의 특징 때문이겠지만, 이 작품의 경우, 씬 전체가 배경 설명이나 인물의 동작 등을 지시하는 지문으로만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특히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과거의 사건이 바뀌고, 현재 사건이 바뀌는 장면을 서술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그 부분이 굉장히 자세한 편이라 꼼꼼히 읽는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그 부분을 읽을 때, 머릿속으로 장면을 그려보기 쉬운 것 역시 대본집의 매력이다.



   이 작품은 아시다시피 낡은 무전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는 사건들의 진범을 각자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뒤쫓는다. 그 사건들의 중심이자, 재한과 해영의 연결고리였던 일에 다다르게 되고, 그곳에서 두 사람은 각각의 형태로 거대 악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과거가 바뀌고 미제 사건들이 사라지고,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고, 살아있던 사람이 죽게 될지라도 끝내 그들이 잡고 싶었던 거대 악에 대한 심판은 드라마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한다.


   어쩌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그들은 드라마 속 대사처럼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일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다만, 재한과 해영은 왜일까에 매몰되어 포기하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에 골몰했던 사람들이었다. 비록 자신의 죽음이 예견되어 있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계속해서 과거 속 미제 사건을 현재 완료 사건으로 바꿀 수 있었고, 거대 악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밝힐 수 있었다.  



재한: 진짜 벌을 받아야 될 사람은 따로 있어. 뒤에서 모든 사건이 그렇게 되도록 만든 사람..
수현: (보는)
재한: 진짜 잘못을 바로 잡아야... 과거를 바꾸는 거고... 미래도 바꿀 수 있어.


   작가는 이 작품을 일부러 열린 결말로 맺었다고 한다. 아직은 재한의 질문에 떳떳하게 답을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았기에. 여전히 이재한 형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수많은 재한과 해영이 이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범주를 비롯한 거대한 세력에 억눌려 있지만, 언젠가 다가올 그 미래를 그리며, 오늘도 그들은 ‘왜’에 매몰되지 않고 ‘무엇을’과 ‘어떻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해영(소리) : 확실한 건 단 하나... 한 사람의 의지로 시작된 무전... 그 무전기 너머의 목소리가 내게 가르쳐준 한 마디...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중략)

해영(소리) : 포기하지 않는다면... 절대 처벌할 수 없을 것 같던 권력을 무너뜨리는 일도... 16년 동안 그토록 찾아 헤맸던 사람을 만나는 일도... 가능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희망은 있다...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서른다섯번째

#Cre쎈조  

#대본집_시그널_리뷰

#시그널2_정말_나올수_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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