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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Oct 13. 2023

뭘로 보지? 물로 보지!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 중에 가장 기분이 상하는 일은 무엇일까? 바로 누군가에게 이용당한다는 기분이 들 때 아닐까? 본인의 이익에 따라 나를 이용했는데, 그걸 마치 내가 무식해서 전혀 모르고 있고, 그저 자신이 뜻한 바대로 움직인다고 여길 때, 수시로 그렇게 이용할 때 기분이 상한다.


   A는 H고등학교 정교사다. 그분을 안 것은 작년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 부장님이 A 선생님이 한국어학급을 처음 맡아 힘들어하는데 내 전화번호를 알려줘도 되냐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그 선생님께 갖고 있는 자료를 다 드리라고 했다.


   작년 3월은 나도 역할이 바뀌어 바빴을 때였다. 그럼에도 당시에도 글에 썼지만, 학생들을 향한 선생님의 열정이 참 감사해서 있는 힘껏 도왔다. 정말 수시로 전화가 오고, 한 번 전화를 하면 1시간은 기본이었지만, 그 막막함을 알기에 열심히 도와드렸다.


   어느 순간, A 선생님이 본인이 할 일조차 나에게 부탁한다는 걸 느껴서 거리를 두었다. 자신에게 채용 권한이 있는 자리를 두고, 나와 본인 학교 선생님 사이를 저울질한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됐지만, 그러려니 했다. 저울에 올라갈 생각조차 없었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여겼다.


   올해 2월 일주일 내내 연수를 듣게 되었다. 오전, 오후 출석 체크가 제법 깐깐한 강의였다.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대리 출석을 부탁했다.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 마지막으로 요청을 들어주었다. 그분이 연수에서 강의하면서, 한국어 강사를 비하하는 발언을 해도 그러려니 했다. 이젠 조용히 인연을 끊고 싶었다. 나에게 변명하는 전화를 걸어왔지만, 그저 그런 분이겠거니 싶었다.


   나중에 다른 부장님을 통해 듣기론, 내가 없는 자리에서 뒷담화를 했단다. 이야기인즉, 정교사들만 알아야 하는 이야기를 듣고, 강사들한테 소문을 퍼트리는 주범이 바로 나라고, 내 앞에서 말조심해야 한다고 했단다. 다문화 언어 강사님이 부족해서, 통번역 보조 선생님을 구하기 힘들어 도움을 요청하기에, 있는 힘껏 도와드렸을 뿐인데 그렇게 나를 평가하고 다닐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그러려니 했다.


   어제는 아주 큰 행사가 있었다. 우리가 속한 교육청에서 직업교육 박람회를 개최하고, 직업계고 부스를 운영하는 행사였다. 올해는 특별히 통역사분들과 함께 ‘다문화 상담관’을 운영한다고 했다. 다문화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해당 학교의 학과에 진학하면 무엇을 배우는지, 진로가 어떻게 되는지, 자세히 알기는 힘들다.


   이렇게 통역 선생님을 통해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상담관을 운영한다기에 기대가 컸다. 아이들이 너무 몰릴까 봐, 어제와 오늘 학년별로 나눠서 학생들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마침 어제는 2학년 전체 학생들이 행사에 참여할 계획이라, 다문화 학생들 인솔만 내가 맡기로 했다. 참고로 우리 학교 2학년 다문화 학생들은 120명 중, 40명이 넘는다. (그것도 러시아어권 학생들만)


   교육감님이 가셔야 하는 길인 줄도 모르고, 길막을 시전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다문화 상담 부스에 방문했다. A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예상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긴 했지만, 휑한 부스가 당황스러웠다. 역시 주 상담자는 A 선생님 한 분뿐인 것 같았다. 신청 때부터 걱정이긴 했는데, 혼자서 저 많은 아이들 상담이 가능할지 싶었다. A 선생님이 없으니 아예 진행되지 않는 것을 보니 더 걱정이 됐다.  


   A 선생님이 왔다. 아이들이 4명씩 그룹으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아이들은 시간이 아까워, 선호하는 학교 부스로 안내했다. 마침 우리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있는 부스가 있어, 그곳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러시아어로 후배들에게 학교와 학과를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여기저기를 오가며, 아이들이 부스 체험도 다문화 상담도 잘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아이들이 상담을 잘 받는지 궁금해서 가까이 가니, A 선생님이 나에게 저리 가라고 한다. 아이들 성적 이야기를 하게 되면 개인정보이고, 민감한 문제이니 그런가 보다 했다.


   사실, 다문화 상담부스에는 우리 아이들밖에 없었다. 다른 언어 선생님들도 계셨지만, 아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여기저기 다 둘러본 우리 아이들만 그곳에서 대기를 했다. 마침 다문화 사업을 총괄하는 장학사님이 오셨다. A 선생님의 열일을 흐뭇하게 지켜보고는 노고를 치하하고 갔다. 사실 귀한 일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실적을 우리 아이들이 올려주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이용당해 줄 용의가 있었다.


   오늘 2학년 한국어 수업이 있었다. 어제 함께 다녀온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어땠는지 물었다. 확실히, 자기 또래 선배들이 러시아어로 설명해 주었던 Y고등학교나 M고등학교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 그곳에 가고 싶다고 정한 친구들도 많았다. 아이들에게 다문화 상담관은 어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남자아이들이 그런다.

“H고등학교 좋다고 했어요. 그 선생님들 H고등학교에서 일한다고 했어요. 거기로 오라고 했어요. 저는 I고에 가야 하는데, 계속 H고 이야기만 했어요.”


   뭐라고? 이게 뭐지? 잠깐 멈칫했다. 빠르게 정신을 가다듬고 여자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전혀 기억나질 않는단다. 그냥 내가 알려주고 소개해 주었던 Y고등학교, M고등학교 선배와의 상담이 좋았단다. 참고로 A선생님이 일하는 H고등학교는 남자학교다.


   조용히 남자아이들에게 따로 가서 물어도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직 고등학교를 정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데리고 간 것이었다. 아이들이 지금 성적으로 어느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지 파악하고, 앞으로의 성적관리에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그런데 이게 뭐지? 본인 학교 부스도 있건만, 거기서 할 이야기를 왜 여기서 저런 이름을 달고 한 것이지?


   수업이 끝나고 나서, 아무리 생각해도 불쾌했다. 자기의 실적을 위해, 자기를 돋보이기 위해 아이들도 나도 모두 이용했다. 아이들의 미래를 개인의 욕심을 위해 이용하다니. 이건 도가 지나쳤다.


   신청 때부터 걱정했다. 그 많은 아이들 상담을 혼자서 어떻게 할지, 지금 H고에 있다고는 하지만, 전공이 영어인데 과별 특성을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차라리 진학 상담 전문교사가 낫지 않나? 그것도 아니면, 특성화 고등학교 중에서도 영역별로 나눠서 선생님들이 배치되고, 통역사분이 각각 나눠서 상담해야 하지 않나? 그러려면 최소 4가지 영역별로 해당 고등학교 선생님과 통역사 선생님까지 해서 러시아어만 8명이 필요하지 않나?


   설마 했다. 혼자서 계속 다 할 수 있다기에 욕심 같아 보였지만, 나름의 열정이 있는 분이라고 여겼다. 설마가 사람 잡았다. 귀중한 시간을 내어 준 아이들에게 너무너무 미안했고, 바보처럼 또 이용만 당한 내가 싫어졌다. 곱씹을수록 화가 났다.


   더욱더 화가 나는 건,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부스 운영한 것을 피드백할 창구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처럼 하찮은 사람의 말은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다. 설사 들어도 결국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


   그렇게 짜증이 나기 시작하니, A 선생님이 나랑 이름이 비슷해서, 연수 때마다 그 선생님 이름 밑에 내 이름이 있는 것도, 그분이 자꾸 나를 따라서 생활한복을 입는 것도 싫어진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꼭 우리가 절친처럼 보이는 것도, 자칫 자매로 착각할 수 있는 것도 다 싫다.


   날 뭐로 본 거지? 물로 봤지, 뭘. 얼마나 쉬웠겠나. 어차피 자기가 실컷 이용해도 밟히면 짓이겨지는 존재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나만 물로 보면 괜찮은데 우리 아이들도 물로 봤다는 게, 아이들의 선생님이 나라서 아이들도 그런 취급을 당한 것이 점점 속상해진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란 생각에 말이다.


   물이란 인간의 삶에 있어 꼭 필요한 존재인데, 물에도 등급이 있나 보다. 있으나 마나 한 구정물 같은 존재라서 그런 걸까. 화가 났다가, 불쾌했다가, 결국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한없이 속상해진다. 구구절절 글로 이렇게 토로하는 내가 참 구질구질하다. 물 맞네. 구정물. 그러니 날 물로 봤겠지-.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서른아홉번째

#Cre쎈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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