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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Oct 22. 2023

대세는 USB

대세는 USB다. 지난 추석 때, 아버님 댁에서 오일장에 다녀왔다. 풍물시장으로 불리는 춘천의 이 오일장에 가면 어르신들 사이에서 요즘 유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아마씨가 대세인지, 곰보배추가 으뜸인지 말이다. 제철 식재료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런 내 발목을 잡은 건, 시뻘건 USB다. 아니, 세상에. 저게 뭐람. 가던 길을 돌아와서 한참을 쳐다봤다. 사진엔 없지만 센터엔 임영웅 님도 있고, 영탁 님도 있다. 그러니깐 말하자면 이건 최신가요 모음 테이프의 뉴 버전이다.

  

   얼마냐고 조심스레 여쭤보니, 만 4천 원이란다. 게다가 최신형이란다. 그러게, 최고로 신기한 형상인 건 인정이다. 문득 예전에 했던 쓸데없는 고민이 떠올랐다. 요즘 나오는 차들은 CD플레이어가 없다. 그럼, 사람들은 운전할 때, 어떻게 음악을 들을까? 라디오만 주야장천 듣진 않을 텐데, 어떤 사람들은 핸드폰을 연결해서 노래를 듣지만, 그런 스트리밍 서비스를 모르는 사람이면 어떻게 할까? 이내 궁금증이 풀렸다.


   리어카 한가득 USB들이 전시된 광경은 신기했지만, 곧 다른 것들로 인해 잊혔다. 오늘에서야 떠오른 건, 목사님의 광고 때문이었다. 이번 주 금요일에 우리 교회에서는 찬양 축제가 열린다. 선교사님이면서 CCM가수이신 공인현 선교사님이 오시는데, 1집부터 4집까지 담은 USB를 판매한단다. 구매를 원하시는 분은 미리 준비하셔도 된단다. 아, 역시 대세였다.


   그러니까 그 옛날 성심 씨의 차를 타면 늘 박종호 님의 찬양이 울려 퍼지곤 했다. 교회백화점에 가면 복음성가 가수 분들의 테이프는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성심 씨의 차는 CD로 업그레이드되기 전에 폐차됐다. 시아버님이나 시어머님은 차에서 따로 음악을 듣지 않으시니, 요즘 대세를 몰랐다.


   당연히 모든 음악을 핸드폰으로 듣는다. BTS 팬이라 앨범을 사긴 하지만, 전시용이다. 집에 CD플레이어가 없어서다. 좋아하는 드라마의 굿즈로 LP를 두 장 샀지만 역시 재생할 기계가 없다. LP와 CD, 블루투스가 모두 재생되는 기계를 들이고 싶지만, 놓을 곳이 없다. 그런데 USB는 컴퓨터든 어디든 꽂기만 하면 되지 않나. USB를 꽂을 수 있는 스피커도 있고. 발 빠른 길거리 차트 사업가들의 대처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대세를 보며 문득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정품’이라는데, 저건 USB가 정품이라는 걸까? 노래가 ‘정품’인 걸까? 저기에 수록된 노래들이 재생되면, 가수와 작곡가, 작사가들에게 저작권료가 지급될까 하는 엉뚱한 고민들. 아마도 이미 다운로드한 곡이니 스트리밍과 달리 재생한다고 저작권료 수입이 발생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궁금해진다. 직접 가수분이 USB를 판매한다고 하니, 무언가 다른 수가 있나 싶어지는 그런 의문들.


   시대의 변화가 오일장에도 스며들었다. 재생할 수 있는 기계가 없으니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테이프와 CD들이 가련하다. 어느새 길거리차트마저 USB에 왕좌를 넘겨주었다. 그다음은 무얼까? 자못 미래의 대세가 궁금해지는 밤이다.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마흔여덟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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