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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Oct 23. 2023

사이다 권하는 사회

김 과장 대본집 리뷰

친절한 김 과장, 아니 친절한 대본집이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대본 공부를 하는 이들에게 공공재가 되길 원해서였을까? 대본집만 읽어도 어떻게 촬영이 되었을지 머릿속에 떠오를 정도다. 여태까지 리뷰를 썼던 작품들처럼 드라마를 보지 않았음에도 영상이 자동 재생된다.


   이 작품은 2017년에 방영됐고 종영되자마자 대본집이 출간됐다. 현대사에서 절대 빠질 수 없게 된 시절을 그리되, 한없이 가볍게 구현해 낸다. 다소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인물들로. 다만, 그런 인물이 대거 등장하지만, 유치하지는 않게 균형을 잘 잡아낸다.


   유치함을 크게 느낄 수 없었던 이유는 TQ그룹 경리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다 보니, 주로 다뤄지는 비리나 파헤쳐야 할 범죄들이 숫자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극 중 대사처럼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지만, 숫자를 다루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며, 그 거짓말을 또다시 숫자로 낱낱이 밝혀내야 하기에 적절한 무게감을 유지한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인물들이 드라마틱하게 회개한다는 점이다. 마치 성령의 불이 임한 것처럼. 보통 이런 종류의 드라마는 절대 선인과 절대 악인이 맞붙게 되는 경우가 많다. 중간에 악인 하나 정도가 결정적 순간에 선한 쪽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매우 드문 편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인 김성룡 과장부터, 그와 대립각을 이뤘던 서율 이사, 회장의 망나니 아들이었던 박명석까지 자신이 추구하던 삶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린다. 대사처럼 인생이란 속도만 조절할 수 있지, 방향을 틀기가 진~짜 힘들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극 중 주요 인물 셋이 삶의 방향을 반대로 틀어버린다.


   자칫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는 설정을 작가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결국 인생의 방향을 틀지 못한 이들은 죄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되고 말이다. 그러면서 현실과 다른  시원한 결말은 독자에게 냉장고에서 갓 꺼낸 사이다 한 잔을 선사한다.


   숫자로 놀음이나 법리 다툼으로 인해 지루해질 때쯤, 작가는 아재 개그 같은 언어유희를 툭툭 던져준다. 이런 부분은 독자에게 소소하게 읽는 재미를 준다. 경리부 직원들이 아재 개그 배틀이라도 하듯, 작정하고 말장난을 하는 부분은, 이래도 안 웃을 거냔 재촉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일단 배경이 되는 TQ그룹부터 한글로 변환하면 ㅅㅂ그룹이지 않은가.       

 

성룡: (쑥스럽고) 사람들이 너무 몰려와서 힘들어 죽겠어. 로비부터 경상남도 부산스러워

상태: (받고) 많이 힘드셨나봐요. 충청북도 음성이 막 떨리세요.

희진: (받고) 좋은 일하신 건데 회사에서 경상북도 상주지.

기옥: (받고) 그럼 희진 씨가 상주라고 위에다 강원도 고성을 지르던가!

하경: (받고) 에이~ 희진 씨 전라남도 무안하게 왜 그래요?

추부장: (드립 날리고 싶지만, 안 나오고, 초조하고)

일동 (고개 돌려 빤히 쳐다보고 잔뜩 기대하고)

추부장: 내가 이런 개그를 못한다고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이야!

일동 (철없이들 웃고)

재준: 어우 유치~ 어우 유치해!

추부장: (V.O) 평창 올림픽 유치~ 하하하-

                  박재범 대본집 [김 과장 1권 6회 中 254쪽]

  

   마지막으로 앞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아주 친절한 대본이다 보니, 이후 화면 밖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결국 누가 뒷배인지, 최종 보스인지 알아채기가 매우 쉽다. 딱히 어려운 화면 기법도 없고, 시나리오 용어가 중요한 대본은 아닌지라, 소설책처럼 술술 읽힌다. 게다가 등장인물의 성격도 대사를 통해 명확히 드러나는 편이라, 구구절절 인물 소개가 없어도 누구의 이야기인지 분간이 가능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쉽게 문제가 해결되는 부분들이 많다. 회계를 다루고, 숫자를 논한다는 점에서 어렵게 보일 뿐이다.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옆 구르기를 하고 봐도 쟤가 범인인데, 어떻게 증거를 들이밀고, 증거를 얻기 위해, 어떻게 설계를 할 것인가에 치중한다. 그렇다 보니 범인 자체를 잡는 재미는 다소 떨어진다. 결정적 증거 확보 또한 감탄을 자아내는 비상한 방법이라기보단, 인물들의 회심에서 비롯된 결과물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김 과장은 좋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설프더라도 옳은 신념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여서 그렇다. 주변을 둘러보자. 나이만 처먹은 사람들만 보이는가? 탐욕을 쫓아 추한 말로만을 남겨둔 사람들이 보이는가? 아니, 어쩌면 자신이 그런 사람인가? 김 과장이 권하는 핵사이다 한 잔 마시고, 돌아가자. 돌아가자고 부추기자. 좀 더 옳고, 좋은 방향으로.


   더 이상 서로에게 사이다만 권하는 사회가 되지 않기 위하여-. 아직은 사이다로 Cheers-.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마흔아홉번째

#Cre쎈조

#박재범대본집_김과장_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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