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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Oct 24. 2023

왕 맛있어서 왕만두

춘천 왕만두 리뷰


왕만두란 모름지기 피가 왕 맛있어야 한다. 만두피가 왕 커서 왕만두가 아니라. 흔히 왕만두 하면 대부분 야채 호빵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두툼한 찐빵 안에 소가 든 그런 만두. 하지만, 왕만두는 그런 만두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성심 씨는 화요일, 목요일마다 여성회관에 갔다. 시간이 늦을 때는 오는 길에 저녁을 사 먹었다. 명동 입구에서 길을 건너, 피카디리 극장 앞쪽으로 오다 보면, 새명동으로 이어지는 골목 어귀에 왕만두 집이 있었다. 각종 만두와 가락국수 등을 파는 가게였다. 거기에서 만두를 포장해서 집에 와서 먹거나, 가게에서 먹고 오기도 했다.


   어쨌든 언제나 우리의 선택은 같았다. 성심 씨와 사진 씨는 물만두, 나는 무조건 왕만두였다. 포장을 부탁하면 다른 만두와 달리, 물만두는 나무 상자 같은 곳에 넣어 주시곤 했다. 걸어서 멀지 않은 거리라, 집에 도착해서 포장을 열면,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가 들어 있었다. 만두 한 입 베어 물고, 단무지 한 입 먹고, 초간장에 콕 찍어서 만두 한 입 먹으면 정말이지 가슴이 포근해졌다.


   어느 순간, 가게를 새명동 쪽으로 이전했다. 당시 예비 시어머님이었던 어머님과 함께 이 집에 들렀다. 우린 야채 무침과 함께 나오는 튀김만두를 먹었다. 보통은 고기만두를 튀겨주는데, 이 집은 달랐다. 튀김만두용 만두가 따로 있었다. 크기도 맛도 달랐다. 튀김에 특화됐다. 새콤한 야채 무침과의 조화가 끝내줬다. 입맛 까다로우신 어머님조차 맛집으로 인정하셨다.


   그 이후 가게는 저 멀리 다리 건너 사농동으로 이사를 갔다. 당연히 자주 갈 수 없었다. 우리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왔고, 온 가족이 만두만 먹으려 사농동까지 갈 순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왕만두는 참 그리웠다. 심지어 생활의 달인에까지 나오는 걸 본 이후론 왕만두가 꿈에도 나올 정도였다.


   어느 순간, 또 가게가 이사했다. 이번엔 우리 아버님 댁 바로 아래다. 올레~ 자주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뻤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우리가 춘천을 방문할 때마다 가게는 쉬었다. 언제 먹을 수 있을까 초조해졌다.


   지난 추석 연휴에 기회가 왔다. 오픈런을 위해 잠에서 깨자마자 달려갔다. 다행히 사람은 별로 없었다. 종류별로 만두를 주문했다. 왕만두 2개, 통만두(고기만두) 2개, 김치만두 2개, 야채 비빔만두 2개. 아버님, 어머님, 시아주버님, 우리 가족까지 모두 배부르게 먹고 남음이 있었다.   



   피가 얇고 투명해서 속이 다 비치는 통만두는 나물이와 까꿍이의 입맛에 맞았다. 칼칼한 김치만두는 어른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까꿍이는 튀김만두도 좋아했다. 튀김만두만 먹는 까꿍이와 달리, 나물이는 야채 비빔에도 도전했는데, 새콤해서 맛있다고 좋아했다. 여전한 나의 원픽은 왕만두였다.


   확실히 만두피가 달랐다. 찐빵 결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통만두 피와도 다른 것이, 포실하면서도 쫄깃하니, 그저 왕 맛있는 만두피 그 자체다. 만두피가 워낙 맛있어서 그렇지, 만두소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소가 자극적이지 않아, 단무지와 같이 먹으면 딱 좋다. 아니면 곁들여 주신 초간장에 찍어 먹거나.


   이 집 만두소가 맛있고, 나랑 잘 맞는다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되었다. 나는 만두를 먹으면 늘 속이 더부룩하다. 흔히 생목이 오른다고 하는데, 만두만 먹으면 늘 그렇다. 그래서 만두를 엄청나게 좋아하지만, 자주 먹지는 못한다. 신기한 건, 이 집 만두는 전혀 그런 게 없었다. 개비스콘을 먹은 것처럼 속이 편안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이사를 하더라도 부디 사라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샌가 메뉴판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물만두처럼, 성심 씨와 사진 씨처럼 그렇게 사라지지 않기를. 어디에든 그저 있어 주기를. 이렇게나 왕 맛있는 만두피는 쉽게 맛볼 수 없으니.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쉰번째

#Cre쎈조

#춘천맛집_리뷰_왕만두

#추억을먹는달팽이_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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