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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Oct 29. 2023

굿즈의 세계

어디까지 사 봤니?


그러니깐 말하자면 난 한 놈만 패는... 이 아니라 한 놈만 파는 스타일이다. 노래도 가수도 작가도 하나에 빠지면 그들의 노래만 듣고, 그의 책만 읽는다. 드라마 역시 그렇다. 한 번 꽂히면, 적어도 블루레이가 우리 집으로 올 때까지는 드라마에 빠져 산다.*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를 자주 보진 않는다. 처음부터 본방 사수를 하는 드라마는 드물다. 보통 유튜브에서 요약본을 보다가, 이건 꼭 봐야겠단 마음이 생기면 비로소 밀린 부분부터 챙겨보고 본방 사수를 한다. 물론 그런 작품 중에 진심으로 꽂히는 드라마는 2~3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다. 때론 10년 만에 나온 적도 있다.


   이렇게 빠지면 그때부터 소위 말해 한 놈만 파는 덕질 라이프가 시작된다. 시작은 초판 블루레이 구매부터다. 초판본에는 온갖 레어템이 한가득이다. 열의가 넘치는 감독님은 심지어 감독판으로 드라마를 재편집까지 해 주신다. 어떤 작가님은 에필로그를 써 주시고, 배우분들이 대본 리딩 형식으로 읽는 영상까지 제공해 준다.  


우리집 굿즈존 1구역 - 주로 블루레이들이 자리하고 있다

   다만, 이 굿즈의 끝판왕인 블루레이를 받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 다른 드라마는 계속 쏟아지고, 언제든 취소분이 생길 수 있다. 그럼, 이 덕후들의 시선을 잡아끌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최근 많이 출판되는 것이 대본집이다.


   드라마가 종영되는 시점에 맞춰, 대본집 예약판매가 시작된다. 초판 대본집에도 각종 부록을 주곤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쉬워하는 이들을 위해 제작사에서 스페셜 공식 굿즈를 발 빠르게 만들어 펀딩에 올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경우, 고래 바디필로우, 우영우 수면안대, 다이어리, 볼펜, 인형키링, 와펜 6종, LP, 악보집 등을 패키지로 하여 와디즈에서 펀딩을 진행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경우, 클래식 드라마에 걸맞게, LP와 악보집 등을 공식 굿즈로 판매하기도 했다. 얼마나 찐 팬들이 많았는지, 종영 후에 곧바로 종이책 대본집도 출간하고, 전자책도 출간했다. 전자책의 경우, 알라딘에서 제일 먼저 공개하며, 예쁜 텀블러도 제작하여 함께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전자책이 그 달의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건 덤이다.      



   나의 경우, 블루레이나 DVD를 사는 선에서 협의를 본 작품은 현재까지 세 작품 정도인데, 그중 두 작품은 주연 배우의 이슈로 인하여 눈물을 머금고 중고 매장에 팔아버렸다. 결국 남은 건, ‘응답하라 1988’이다. 이 작품에 빠졌을 땐, 딱히 딥한 굿즈의 세계를 잘 모르기도 했고, 블루레이 기계도 들여야 했기에 그 정도에서 만족했던 것 같다.


   사실 여기까지는 다들 뭐, 그 정돈 무난하지 않나 싶을 것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다다르니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빠져들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드라마의 팬들을 ‘단원’이라 부르는데, 제대로 ‘단원’이 되어버렸다.


   팬들이 만드는 자체 굿즈에 눈을 떠 버렸다. 단원들이 만든 떡메모지 나눔부터, 판매하는 책갈피, 공동구매로 구매하는 보조배터리, 전자파 차단 스티커, 컵, 손수건, 키링, 에코백 등. 머그컵이나 그릇도 있었다. 나는 결국 패스했지만, 후드티까지 제작되기도 한다.


   거기에서 그치면 좋으련만, 단원들에겐 악상기호가 주어졌다. 주로 독일어로 이루어져 있어, 꼭 단체주문이 아니어도 스스로 굿즈를 생산해 낼 수 있었다. 필통이나 샤프, 심지어 나무 국자도 굿즈로 만들어 버렸다.


   요샌 개인적으로 구매하더라도, 각인 서비스가 제공되는 경우가 있다. 드라마에서 인상 깊었던 문구를 각인하여 주문하는 것이다. 심지어 단원들끼리 각인 서비스가 되는 용품들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렇게 소소하게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며, 서비스를 이용하면, 굿즈의 무한 생성이 가능한 시스템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브람스에서 우영우로 들어오면서 살짝 자제하곤 했다. 공식 굿즈로 족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딱 이거 하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바로 공구로 제작된 무드 등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명대사로 만든 무드 등은 오늘도 우리 집 안방을 밝히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드라마에 빠질지는 모르겠다. 이 글을 읽은 나또 님은 아마도 질색하겠지. “그만 사!”라는 외침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아직은 그저 영원히 단원으로만 남고 싶긴 하다.


   드라마가 종영된 이즈음이면 한 번씩 대본집을 읽고,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듣는다. ‘innig’**가 새겨진 필통에, 같은 문구가 새겨진 샤프를 담아서 출근한다. 퇴근하면  Crescendo***가 새겨진 국자로 요리한다. Widmung****가 쓰여 있는 그릇에 디저트를 담고, 전체 가사가 적혀있는 머그컵으로 커피를 마신다. 그래서 내일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대본집 리뷰로 돌아오려 한다.


   꼭 드라마가 아니어도 좋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딘가에 깊이 빠져, 덕질을 해 본 적이 있는가? 굿즈를 모아 본 적이 있는가? 어디까지 사 봤는가? 필자는 국자까지 사봤다. 뿅-.


 *보통 작품이 끝나고 블루레이를 제작하여 배송이 완료되기까지는 1년이 넘게 걸린다.

 **독일어. 악상기호. 진심으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3부 부제였음.   

 ***이탈리아어. 악상기호. 점점 크게. 16부 부제였음.

 ****헌정. 슈만이 클라라에게 결혼식 전날 밤 선물한 성악 가곡집. 헌정은 가곡집의 첫 번째 노래다. 훗날 리스트의 의해, 가사 없는 피아노곡으로 편곡됐다.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쉰다섯번째

#에이뿔       

#브람스를좋아하세요#단원인증

#이상한변호사우영우

#드덕라이프_굿즈의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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