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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Nov 08. 2023

솥뚜껑과 바꾼 밥

강화도 화개정원


강화도 체험학습의 마지막은 화개정원이었다. 전망대까지 올라가야 하지만 날씨가 너무 흐렸다. 비바람이 몰아쳤다. 우산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연신 뒤집혔다.


   그 와중에 솥뚜껑 여덟 개 중 여섯 개를 찾아서 QR코드를 찍으면 쌀을 준단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도 별로 없고, 날도 춥고 그냥 내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아이 두 명이 있었다. 그 두 명을 데리고 솥뚜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언덕을 지그재그로 다니며 분주히 QR코드를 찍었다.


   아니 그런데 왜 2번부터 찍히지? 분명 해설사 선생님께서도 이게 1번이 아니냐며 놀라신다. 어쨌든 2번부터이니 7번까지 찾아야 한다. 그 말인즉,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단 소리.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솥뚜껑을 향해 나아간다. 어디 있니, 솥뚜껑.


   결국 일곱 번째 솥뚜껑을 찾았다. 쌀을 받을 수 있다. 후다닥 내려가려는데, 아이들이 그런다. “선생님은 1번 없어요, 괜찮아요?” “괜찮아. 6개만 있으면 된다고 했어. 번호 상관없어.”


   아뿔싸. 통역 선생님은 멀리 가셨다. 이 두 아이는 한국어 실력이 낮은 편이다. 계속 불안해하는 얼굴로 나를 따른다. 시간은 2시 10분을 넘어가고 있다. 2시 30분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고 흥사단 사무국장님께서 신신당부하셨다. 지금 내려가서 쌀을 받고, 화장실까지 들르려면 빠듯하다.


   아이들을 다독이며 내려오는데, 저 멀리 솥뚜껑이 보인다. 우리가 찍지 않은 1번이다. 다만 지그재그로 된 길에서 반대쪽 끝으로 가야 할 뿐.


   구르다시피 언덕을 내달린다. “얘들아, 저기 있어, 저기.” 아이들도 신난 모양이다. 1번 솥뚜껑을 향해 내달린다. 드디어 도착. 찍었더니 1번이 맞다. 8번은 못 찾아도 좋다. 1번이 채워지니 왜 이리 뿌듯한지. 나 T인가.


   그렇게 핸드폰을 들고, 매표소로 향한다. 직원분께서 선물이 쌀이라서 어쩌냐며 걱정하신다. 우린 이미 알고 있었다고 괜찮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мама(마마, 엄마)에게 꼭 가져다 드리라고, 좋아하실 거라고 엄지를 치켜 보인다.


   2시 17분이다. 주차장을 향하여 다시 내달린다. “선생님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저기 버스 보이지? 가 있어.” 그렇게 아이들을 보내고 화장실에 들른다. 마음이 급하다. 되도록 25분 전에 도착하고 싶다.


   어찌어찌 버스에 올라탄다. 27분이다. 휴. 다행이다. 어라. 그런데 통역 선생님, 다른 선생님과 나에게 30분 출발을 신신당부하셨던 사무국장님이 보이지 않는다. 다들 정상까지 올라가셨단다. 헉. 난 솥뚜껑만 쫓다가 왔는데.



   결국 40분이 넘어서야 다들 내려오신다. 정상이 그렇게나 멋졌다나. 바다를 좋아하지 않는 선생님조차도 화개정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가 너무 예뻤단다. 음, 약간 아쉽지만, 쌀을 보며 만족한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왔다. 오늘 저녁은 솥뚜껑과 바꿔 온 쌀밥이다. 쌀밥에 곁들일 김치찌개를 끓인다. 흰쌀밥에 어울리는 스팸 구이와 계란프라이, 멸치볶음을 단출하게 올린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교동도 간척지 쌀로 만든 밥과 뜨끈한 김치찌개 한 입을 먹어 본다. 언덕을 구르다시피 내려오던, 그 피로가 조금은 사라지는 맛이다. 생각보다 밥맛이 좋네.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강화도에 가서 솥뚜껑으로 쌀만 바꿔왔다. 언젠가는 강화도 구석구석을 제대로 즐기고 오리라, 다짐하며, 씩씩하게 밥 한 숟가락을 입 안에 넣어 본다. 다음엔 교동도 쌀이 아니라, 강화도를 꼭꼭 씹어먹으리라-.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예순다섯번째

#에이뿔

#11월6일_월요일이야기

#강화도_화개정원_조인나우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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