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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Nov 12. 2023

못된 신앙을 넘어 뭐든 신앙으로

나의 신앙고백과 간증


못된 신앙 아니 모태 신앙이었다. 엄마 성심 씨는 교회 가지 않으면 혼내고 아빠 사진씨는 교회에서 늦게 온다고 우릴 괴롭혔다. 그러니 일단 교회는 갔다. 가끔 사진 씨의 횡포를 피해 교회로 숨어들기도 했고.


   교회는 나의 습관이자, 피난처이자 기댈 곳이자, 때론 놀이터였지만, 여전히 나는 신앙이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성경 지식이 좀 있어 성경 고사에나 나가는 아이 정도였다. 그렇게 못된 신앙을 가진 채로 자랐다. 입교까지 했건만 그건 나의 신앙이 아닌 성심 씨의 신앙이었다.


   고3을 앞둔 겨울방학이었다. 이 수련회는 어쩌면 내 인생에 있어 중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수련회였다. 당시 우리 교회는 여름엔 무조건 전교인 수련회에 가곤 했다.


   전교인 수련회 나름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50명이 넘어가는 중고등부 아이들이 애매하게 매번 어르신들과 꼬리 잡기를 하고 캠프파이어를 할 순 없었다. 겨울은 무조건 자체 수련회여야 했다.


   새로 오신 전도사님께서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 전국 수련회에 가자고 하신다. 전국 수련회를 가 본 적도 없으면서 무조건 반대를 외치며 못된 반항을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나를 놓고 중고등부 전도사님과 선생님들이 엄청나게 기도하셨단다.


   결국 난 그 수련회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아니 못된 나를 기다리고 계셨고 만나주셨다. 내 평생 밤새 잠 한숨 자지 않고 기도한 것은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않을까.


   그 이후로 주일마다 학교에서 자율학습이 끝나자마자 교회로 향했다. 전도사님께서 중고등부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고3들을 위해 특별히 그 시간에 큐티 모임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다. 고3 내내 아침 자율학습 전에, 기도와 큐티로 시작했음은 물론이고.  


   말씀을 읽는 즐거움, 기도하는 기쁨을 알아가다가 좌절도 하고 부침도 겪었다. 연이은 임용고시 실패와 결혼, 갑작스러운 사진 씨와 성심 씨의 죽음. 하지만 그것들 안에서도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던 신앙은 육아의 구렁텅이에 빠지면서 완전히 빛을 잃어갔다.


   어쩌면 그때 자모실(이하 유아실)에 있던 나를 보셨다면 성경 구절이 이렇게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유아실에 있는 달팽이가 예배를 제대로 드리는 것보다 쉬우니라.’


   못된 이가 아닌 뭐도 아닌 신앙의 연속이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다시 말씀 앞에 서게 되는 시간이 왔다. 다시 또 주님은 나를 부르셨고, 뭐든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빚어 가셨다.


   아직 뭔가 이루지는 못했다. 부끄럽지만 나무지기 훈련을 하며 처음으로 규칙적인 기도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둘째 날 나를 너무나 기다리셨던 주님의 마음이 느껴져 그만 눈물이 났다.


   그저 자라는 뭐가 되고 싶다. 날마다 주님 안에 거하며 말씀으로 자라고, 매일 주님께 기도하며 자라는, 그런 나무를 가꾸는 나무지기가 되고 싶다. 교회의 뭔가가 되고 싶다.


   언젠가 또 넘어지고 다칠지도 모르겠다. 다시 못된 신앙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늘 여전히 나를 기다리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자라 가는 달팽이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


   덧붙여, 나처럼 육아로 인해, 혹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힘든 이들과 같이 울어주고 품어주며, 보듬어 주는 그런 나무지기가 되고 싶다.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섬기는 나무지기 말이다.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예순아홉번째

#에이뿔  

#낮은숲교회

#나무지기2기훈련_과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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