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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Nov 15. 2023

학익골 샌님


딸깍발이, 남산골샌님은 코끝이 시려야 정신이 맑아진단다. 그의 꼿꼿한 기개나 빈한한 가운데서도 반짝이는 정신은 닮지 못한 채, 딱 코끝이 시린 것만 닮았다. 정신이 맑아지는 건 별개란 뜻이다.


   그러니까 자고로 모름지기 겨울이라면, 등은 따끈하고 코끝은 시려야 제맛이다. 코끝에 방울방울 콧물이 맺힐지라도, 등은 뜨셔야 한다. 등을 지진다고나 할까.


   그런 학익골 샌님에게 천장으로부터 쏟아지는 뜨거운 공기는 너무 어지럽다. 어딘지 모르게 시대에 뒤떨어져서 그런가. 차라리 추워서 옷을 껴입을지언정, 속이 울렁거리고 멀미가 나는 건 참을 수 없다.


   이 학익골 샌님은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자랐더랬다. 교동골에 살 때부터. 교동골 첫 집은 연탄보일러를 때고, 외풍은 심한 그런 집이었다. 등은 뜨끈하지만, 코끝은 시린 그런 곳. 첫 경험이 이래서 중요한 것일까? 그렇게 약 10년을 살았으니, 그 이후론 적응이 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두 번째 집은 기름보일러였다. 그래도 여전히, 침대 위에도 전기장판을 깔아야 했다. 기름값은 비쌌기에, 난방은 최소화해야 했다. 코끝이 살짝 시려도, 등이 따시니 모든 것이 좋았다.


   학교도 그랬다. 학교의 난방이란 교실 가운데 떡 하니 놓인 등유 난로였다. 난로 곁 아이들은 얼굴이 시뻘겋고, 창가 아이들은 오들오들 떠는 그런 구조다. 그렇더라도 막 머리가 어지럽거나 멀미가 나진 않았다.


   아마도 덜 그렇다 느끼는 건, 점심시간이면 먹을 수 있는 김치 도시락밥 때문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하여튼 적당한 거리에만 앉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스템(?)이었다. 겨우내 우리의 밥까지 책임져 주었기에.


   시대가 좋아졌다. 천장에서 여름엔 찬바람이, 겨울엔 뜨거운 바람이 내려온다. 거추장스러운 기계도 없고, 깔끔하니 얼마나 좋은가. 기계 하나로 여름과 겨울 모두를 지날 수 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계속해서 난방기가 작동한다. 햇볕이 들지 않는 곳이라, 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시원했던 곳이다. 습기가 많아 곰팡이는 덤이었지만.


   시대 문물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익골 샌님은 괜스레 뜨뜻한 코끝을 만져본다. 그러고는 이내 쓸데없는 생각에 잠긴다. 저 바람이 성령의 바람이면 좋으련만...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일흔두번째

#에이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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