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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Nov 13. 2023

대본 계의 일타강사

뿌리 깊은 나무 대본집 리뷰


“무사 무휼~!.”

“지랄하고 자빠졌네-.”

몇 주간 뿌리 깊은 나무 대본집을 읽고 있으니, 나또 씨가 옆에서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로 ‘무휼’을 외쳤고, 나는 저 욕을 맛깔스레 내뱉으며 대꾸했다. 오늘의 대본집은 스치면서 짤이라도 봤을 법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한글은 정말이지, 그 어떤 수식어로도 찬사를 다할 수 없는 문자다. 게다가 훈민정음해례본이 지니는 가치는 말해 무엇하랴.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로 시작하는 서문의 웅장함과 뿌듯함이란.


   그 뿌듯한 일이 소설로, 드라마로 펼쳐지는 건, 생각보다 더 흥미진진한 일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 집에 TV가 없었음에도 어떻게 해서든지 드라마를 최대한 빨리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 여운은 저렇게 무휼과 지삐로 남아있고.


   다만, 이 드라마는 소설과 매우 다른 작품이다. 사실 이름만 같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다른 드라마가 되었을까. 대본집 뒷부분에서 작가님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원작의 추리요소를 약화시키고 장년층도 사랑할 수 있는 사극(史劇)을 만들기 위해 장쾌한 액션으로 내용을 풀어나간 것이라고.


   이 작품은 대장금과 선덕여왕을 썼던 작가 김영현 님과 박상연 님이 함께 집필한 작품인데, 박상연 작가님은 아예 원작 소설 자체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원작이 인기 있는 경우, 드라마화할 때, 엄청난 부담이 있었을 텐데, 원작을 보지 않았다니 다소 의아한 부분이긴 했다. 물론, 원작 자체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팩션(Faction)’이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만, 다소 아쉬운 부분도 많이 등장하긴 한다. 사극이라 그런 것인지, 원래 작가들의 스타일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바로, 행동이나 장면을 묘사하는 작가의 지시문이 그것이다. 채윤이 겸사복청에서 태를 맞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을 살펴보면 이렇다. ‘채윤, 몇 대를 맞다가 못 참겠다는 듯, 학생주임에게 맞는 날라리 고등학생처럼 엄살을 부리듯 비명을 질러댄다.’


   사극이라, 배우나 감독이 머릿속에 장면을 떠올리기 힘들까 염려되어 그런 것일까. 처음엔 그저 신기하다는 입장에서 보았다. 점차 읽어 갈수록 그런 부분이 나오면 흐름이 와장창 깨져서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 대본집은 대본 계의 일타강사라 여길만하다. 부록에 실린 작가의 작품 노트나 배경 설정 노트 등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특히 3권 뒤에 있는 작가들과의 인터뷰는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작가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건네는 말이 잘 담겨 있다.



   이 작품 전반에는 조선의 뿌리, 즉 조선을 이루는 근간은 누구이며, 무엇인가에 대한 사유가 담겨 있다. 그러면서 그 뿌리를 이루는 이들이 권력을 지녀야 마땅한데, 그렇지 않은 현실에서 오는 문제들이 속속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렇다면 이 시대의 권력은 어디에서 생기는 가에 대해서 양쪽은 서로 극렬하게 대립하게 된다.


   종국에는 ‘글자=권력’이라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글자를 알면, 정보를 독점할 수 있고, 그 정보는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된다면 ‘한자’라는 글자를 독점한 사대부들의 근간이 흔들린다고 말이다.


   자기 모습을 숨기려, 백성 중에 가장 낮은 자리, 백정의 위치에서 숨죽이고 있던 정기준이 필사적으로 세종 이도가 만든 ‘글자’의 반포를 막으려는 모습은 참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권력이 임금이란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으면서도, 결국 자신들이 권력을 움켜쥐고 다른 이와 나누지 않으려는 사대부들의 이중적 모습이 말이다.


   작가님들은 이 작품에서 정기준의 입을 통해, 글자가 대중화된 현대 사회의 폐해를 들어, 한글 창제 반대 논리를 펼치고자 하셨다고 한다. 물론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고.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소수가 글자를 독점할 때의 비극이, 대중이 글자를 나누었을 때의 비극보다 크기 때문이라고.   


   드라마를 볼 때도 그랬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반전이자,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던 장면은 다름 아닌 ‘한가놈’의 정체였다. 가리온이 정기준이란 건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한가놈이 결국 한명회였다는 건 참 무서웠다. 밀본 4대 수장이 한가놈에게 반드시 수양대군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게 극 중에서 4대 밀본 수장의 명에 따라 한명회는 역사 전면에 나서서 재상총재제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아무리 팩션일지라도 그의 인생사나 궤적을 살펴보았을 때, 한가놈이 한명회였다는 건, 역시 소름이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드라마처럼, 아니 실제로도 세종대왕께서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훈민정음’ 즉 ‘한글’을 만들어 주셨기에 지금 내가 이 글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머리를 쥐어짜며 내일 있을 독서토론을 위해 책을 읽고 있기도 하고. 새삼 세종대왕님께 감사해지는 밤이다.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일흔번째

#에이뿔  

#뿌리깊은나무

#SBS드라마대본집_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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