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우리는’ 대본집 리뷰
지난 한 주간 날씨는 꼭 ’인디언 서머‘ 같았다. 인디언 서머란, 보통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하는 기온 현상으로, 늦가을에서 겨울로 들어가기 직전, 일주일 정도 따뜻한 날씨를 일컫는 말이다. 겨울의 초입에서 갑자기 마주한 여름 말이다. 그래서 어쩐지 이 작품이 생각났다. 오늘의 대본 ‘그해 우리는’이.
처음 ‘그해 우리는’을 읽었을 때는 한여름이 떠올랐다. 그 옛날 중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소나기’도 생각나고. 그저 청량감이 묻어나는 작품이라 여겼다. 초록색이 선명한 어느 여름날, 뜨거운 햇빛처럼 맹렬하게 서로를 미워하기도, 때아닌 소나기처럼 서로에게 푹 젖어들기도 하는 두 청춘 남녀의 사랑이 촉촉했더랬다.
다만, 그것은 겉이었다. 청량감이 묻어나는 껍질을 벗겨보니, 황량함과 막막함을 앞둔 그들의 속살이 드러났다. 이 작품 속 청춘은 잔혹한 추위를 앞둔, 늦가을의 인디언 서머였다. 보이는 질감이 다를 뿐, 속살의 무게는 가볍지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 삶을 살아내는 청년들의 찰나 같은 반짝임이 빛나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실제 다큐를 모티브로 했다. 그래서인지 작품 전체가 다큐를 보는 것 같다. 전반적으로 내레이션과 대사가 절묘하게 교차하는데, 내레이션 부분은 특히나 다큐멘터리의 호흡을 따라간다. 내레이션과 대화는 어미변화를 주어, 그 경계와 구분이 활자로도 명확하게 이루어진다.
어쨌든, 이런 내레이션으로 인해, 계속해서 드라마 속의 다큐멘터리가 국연수와 최웅을 둘러싼 실제 삶으로도 이어진다. 결국 평범한 그들의 삶이, 어쩌면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삶 또한, 보듬어 주고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 손길이 매우 담담하다. 다큐멘터리처럼 담백하기도 하고.
또 눈여겨볼 점은 회마다 붙은 부제다. 지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그랬지만, 요즘 드라마 중에는 회마다 부제를 두는 경우가 많다. 이 작품의 부제는 모두 영화 제목인데, 마지막 화만 본래 드라마의 제목을 부제로 한다. 또한 너무도 당연하게도 부제는 해당 영화 내용과 연관이 있으며 해당 회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 나는 버려짐과 버림에 대한 고찰이 읽혔다. 단순히 남녀 간의 이별이 아닌, 버려지기 전에 버릴 수밖에 없는 두려움과 또 버려지지 않으려는 보이지 않는 몸부림이 서글프게 다가왔다. 버려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버린 후에 느끼는 공허함과 막막함이 심장을 두드리곤 했다.
그래서 때론 대본집을 읽다가 후드득하고 눈물이 흐르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후반부에 갈수록. 생각보다 무겁게 한 방 훅 날아오니, 미처 피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게 되는 순간들이 말이다. 굉장히 가볍고 청량한 느낌의 청춘 로맨스 드라마라고 집어 들었다가, 호되게 한 방 맞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뜬금없이 찾아왔던 지난주의 인디언 서머가, 잠시 잊고 있던 겨울바람의 시리고, 매서움을 더욱 매섭게 느끼게 해 주었다. 이러한 날씨처럼, 청춘들의 청량함 속에 숨겨진 현실의 매서움이 매력적인 작품이기에. 이런 날씨에 읽기 딱 맞는 작품이기에.
특별할 것 없는 일상들이 결국 우리네의 삶이라며, 그 삶을 살아내는 당신을 어느 순간, 보듬어 주는 이 작품을 권해본다. 그 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 최웅 (N)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잊지 못하는 그 해가 있다고 해요. 그 기억으로 모든 해를 살아갈 만큼 오래도록 소중한. 그리고 우리에게 그 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그해 우리는 대본집 2권 中 16회. 51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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