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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Oct 20. 2021

지 밥그릇만 챙기는 년

잘 지켜야 해요(2)

옛날 옛적에 말희는 여전히 은혜 풍 씨가 풍성한 학교에서 근무 중이었어요. 말희가 일하는 학교는 여고였어요. 학생 두 명이 말희에게 찾아왔어요. 조용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어요.


   아이 하나가 머뭇거리면서 이야기를 해요. 아이는 공부를 꽤 잘해서 수학 영재반이었어요. 영재반 수업을 담당하는 풍금알 선생님이 지난 저녁에 아이네 집에서 라면을 먹고 갔다네요. 아이는 전학을 와서 혼자 자취를 하는 학생이었어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남자 선생님이 여학생 집에서 라면을 끓여 달라고 할 수도 있죠. 먹고 갈 수도 있죠. 집에 라면 끓여 줄 사람이 없다면 말이죠. 풍금알 선생님은 갓 돌이 된 아기가 있는 아빠니, 부인이 집에 분명 있을 텐데, 왜 그랬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라면만 먹고 가면 좋았을 텐데, 학생 무릎을 베고 누웠다가 갔다네요.


   말희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손이 부들부들 떨려와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괜스레 아이를 타박해요. 왜 그 금알 쌤을 집에 들였냐고. 그렇지만 그게 아이 잘못이겠어요. 곧바로 말희는 사과했어요. 혼자서는 이야기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그나마 믿고 의지하는 우아한 부장님께 살짝 말씀드려 봐요.


   우아한 부장님도 화가 많이 나셨어요. 교장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셨어요. 하지만, 곧 우아한 부장님이 말희를 불러요. 이번에는 조용히 넘어가자고. 교장 선생님이 금알 쌤을 불러 단단히 주의를 줬다고. 아이는 계속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오히려 이 일이 공론화되면 아이가 더 힘들다고.




   그러게요. 사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청소 시간에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어요. 선생님들이 놀라, 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어갔어요. 학생은 교탁 밑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어요. 그 앞에 풍마빈 쌤이 마빈 박사 같은 웃음을 지으며 서 있어요.


   알고 봤더니, 마빈 쌤이 청소하는 여학생이 너무 귀여워서 가슴을 만졌다네요. 마구 움켜쥐었다고. 아이는 선생님의 애정 어린 표현에 너무 놀라, 그만 비명을 지르고 덜덜 떨 수밖에 없었고요.


   그날 학교는 발칵 뒤집어질 뻔했어요. 특히 여자 쌤들은 모여서 대책 회의까지 열었어요. 마빈 쌤의 넘치는 애정표현 때문에 교육청에서 시정 명령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래요. 하지만, 은혜가 풍성한 만큼, 용서와 사랑이 풍성한 학교다 보니, 늘 어떤 처벌 없이 넘어갔다네요.


   이번에는 그냥 넘길 수 없다고, 목격자도 많다고 단단히 벼르던 중이었어요. 교무회의 시간에 지 부장이 마이크를 잡고 일어나요. 마빈 쌤이 학생이 귀여워서 가슴 좀 움켜잡은 게 뭐 대수냐고 해요. 아이가 오버한 거래요. 유난이래요. 그렇게 그 일도 넘어갔어요.



 

   결국, 말희는 아이에게 그저, 미안하단 소리만 할 뿐이었어요. 어떤 것도 해 줄 수가 없었어요. 만약 말희가 이일을 공론화하고, 교육청에 투서하면, 분명 바로 잘릴 거예요. 현장범(?)인 마빈 쌤도 지 부장이 저렇게 싸고도는데, 금알 쌤이 아니라 하면 어쩌겠어요. 말희만 이상한 년이 되는 거예요.


   게다가 말희는 내년에 또 여기서 일하고 싶어요. 그래서 아이를 위한다는 핑계로, 그저 가만히 있기로 해요. 말희는 그렇게 지 밥그릇을 지켰어요.



   말희는 어떻게 되었냐고요? 말희는 결국, 지 밥그릇도 못 챙기는 년이 되었어요. 다음 해에 재계약에 성공하지 못했거든요.


   말희는 그때 지 밥그릇만 챙기는 년이 된 걸, 지금도 후회한다네요.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네요. 아이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간 금알 쌤도, 아이가 귀엽다고 가슴을 주무르던 마빈 쌤도 모두 모두 여전히 은혜가 풍성한 학교에서 잘 먹고 잘살고 있는 소식을 들을 때 마다요. 지 부장도 풍 씨들을 잘 지켜,  승승장구하며 교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더 그랬다네요.   


   여러분, 잊지 마세요. 때론 내 밥그릇이 위험할지라도, 지 밥그릇만 챙기는 사람이 되진 말아요, 우리. 대신 아이를 지키고, 다른 사람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 보아요. 많이 어렵고 힘들겠지만요. 오늘의 동화 끝.




한국어 강사 말숙이와 기간제 교사였던 말희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그동안 따스한 댓글로 공감해 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이야기들이 언젠가 꼭 동화 속에만 있기를 바라며, 저 자전거 탄 달팽이는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은 ‘쓰는 인간’님의 마지막 비정규직 잔혹동화가 여러분을 찾아옵니다.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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