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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Sep 06. 2023

글감 공장의 오류

띠띠띠띠-. 어디선가 오작동을 알리는 경고음이 들린다. 그래, 이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커다란 얼굴 한 덩이와 그 얼굴의 2분의 1 덩이가 꼭 닮은 빙구 웃음을 날리며 나를 바라보는데 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싶다.


   내가 다시 글을 쓰겠다고 이야기하니 우리 집에는 글감 공장이 차려졌다. 너도나도 글감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나에 대한 디스들이 모두 다, 이때를 위한 글감이었다며 큰 얼굴 덩이가 말한다. 그건 죄다 불량품일 뿐이었다.  큰 덩이와 얼굴을 맞댄 2분의 1 덩이도 우리를 보며 글을 쓰라고 재촉한다. 빙구 웃음을 묘사하는 글은 쓰고 싶지 않다.


   앞머리가 있는 3분의 2 덩이가 등판했다. 엄마는 언제 글을 쓸 거냐, 다 쓴 거 맞냐, 더 써야 한다 등등. 글을 재촉하는 공장도 가동을 시작했다. 다만 재촉에만 힘을 쏟아서 그런지, 딱히 글이 나오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글이 아닌 짜증만 만들어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남편이 또 그런다. 페이스북이 장난이 아니더라며 놀려대기 시작한다. “오~ 당신 글을 기다렸대~. 오늘은 또 뭘 쓸 거야? 벌써 쓴 건 아니지? 내가 그동안 글감 많이 줬잖아. 장군! 이것도 있고.” 하아... 그분의 공장 가동을 멈춰 버리고 싶어 진다. 정말이지 글을 쓰는 데 1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쓰고 싶은 것들은 머릿속에 가득한 데, 시간이 다소 필요하다. 읽어두었던 대본집 리뷰를 쓰려고 해도 한 번 더 훑고 내용을 정리해야 한다. 사실 할 일이 쌓여있기도 했다. 자꾸만 집중력도 흐트러진다. 쓰고 싶었던 글감으로 끄적이다 멈추고, 끄적이다 멈추고 하다 보니 시간만 속절없이 흐른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띠띠띠띠-. 역시 오작동이다. 글감 공장은 오작동인데 결국 글이 나오긴 했다. 그것도 전혀 원하는 글감이 아닌, 그들이 원하는 내용의 글감으로 쓴 글이 나왔다. 2분의 1 덩이 하원 픽업이 가능한지 큰 덩이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오늘은 자기도 바쁘단다. 그러면서 글을 아직 못 쓴 거냐고 또 채근을 해댄다. 큰 덩이 때문이라도 뭐라도 쓰고 나가야겠다.


   내일은 조금 더 다른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욕심을 버리고, 글력이 근력이 되어가는 그런 글을 쓰는 내일이 되면 좋겠다. 이만 2분의 1 덩이를 데리러 나가야겠다. 글 공장의 오작동으로 나온 글이라 읽을수록 허접하지만, 내일은 글 공장이 정상 작동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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