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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Sep 07. 2023

초딩 사모

“당신 초딩이야? 예배에 크록스를 신고 오면 어떻게 해? “

“아, 안돼? 양말 신었는데?”

“당연히 안 되는 거지.”

“아, 알겠어. 다음부터는 안 신을게.”


그랬다. 보통은 생활한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주일 예배에 가는데, 그날따라 어쩐지 그러고 싶었다. 새로 산 와이드핏(다만 내가 입으면 레귤러핏)의 청바지와 티셔츠, 그리고 색감이 쨍한 반팔 남방에, 엄청 저렴하게 구매한 크록스를 신고 교회에 가고 싶었더랬다. 그랬다가 이 사달이 난 것이다.


   물론 그날 여기저기서 그런 이야기는 들었다. 생활한복을 입지 않아서 사모님인 줄 몰랐다는 이야기들. 그래도 크록스가 안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정말 초딩인가, 그러면 안 되는 건가 싶어서 월요일에 같은 학교 선생님께 여쭤봤다. 안된단다. 금요 철야나 토요일이면 모를까 주일엔 안된단다. 양말을 신어도.


   그러게. 여전히 나는 크록스를 신고 주일 예배에 가는 초딩 사모이고, 그게 왜 잘못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불량 사모다. 이런 내가 남편이 담임목사가 되니, 담임 목사 사모가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어딘가 많이 부족하고, 모자라며 어수룩한데 묘하게 삐뚜름하다.


   사실 그냥 부교역자 사모일 때와 크게 다른 점이 없긴 하다. 물론, 이젠 정말 내가 사모인 걸 모르는 분이 거의 없다는 것, 남편이 설교 시간에 내 이야기를 하면 바로바로 피드백이 온다는 것 정도가 달라진 점이랄까. 담임 목사님의 목회 철학에 따라, 주일에 소그룹 안에서 교제하는 루틴을 만들기 위해 교회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점은 꽤 달라진 점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축도가 끝나자마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하듯 후다닥 교회에서 탈출하기 바빴으니깐.


   물론 받아들이는 분들이 어떨지 모르지만, 꼰대 담임목사 사모가 되지 않기 위해 꽤 노력하는 중이기도 하다. 부교역자 사모일 때, 여기저기서 들은 사례를 토대로,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했던 목록이 있었다. 그때 생각해 놓은 것들을 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그러다 문득 ‘이 정도면 부교역자 사모님들께 꽤 괜찮은 담임목사 사모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면 또 그런 생각을 한다. 원래 제일 못된 시어머님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어머~ 얘, 세상에 나 같은 시어머니가 어딨니? 너 복 받은 줄 알아.”라는 사실을 말이다.


   여전히 난 잘 모르겠다. ‘사모’란 호칭에 적응이 되지 않아, 누가 사모님이라고 나를 부르기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고, 고개가 수그러지는 나란 사람에게 사모의 길이란, 그것도 정도를 걷는 사모의 길이란 어쩐지 요원해 보이기만 하다.


   다만, 그저, 처음 사모가 되었을 때의 마음, 그 초심을 잃지 않는 사모가 되고 싶다. 늘 언제가 주님 앞에서 한결같은, 초지일관의 태도를 잃지 않는 그런 사모 말이다. 그래, 남편 말이 다 맞다. 난 초딩 사모다. 초지일관의 태도를 잃지 않는 ‘초1 사모’다. 초등학교 1학년처럼 어리숙하지만, 그 첫 마음을 잃지 않는, 늘 한결같은 사모가 될 것이다. 단, 초딩이지만 크록스를 주일에 신지 않는 그런 초딩 사모가 되어야겠다.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세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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