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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Sep 12. 2023

내가 살던 그 집


“여기가 어디냐면요~ 춘여고 담벼락 끼고 언덕 위로 올라오시면, 빨간 벽돌 이층 집이에요.”

무언가를 배달시키거나 우리 집의 위치를 설명해야 할 때, 늘 하던 말이었다. 그러면 거의 모든 분이 헤매지 않고 아주 정확하게 잘 찾아오시곤 한다. 우리 집 앞으로 모든 집들이 철거 대상이라, 철거되고, 그 자리에 주차장이 생긴 이후론 더 그랬다. 왜냐하면 언덕 위에 빨간 벽돌 이층 집은, 언덕 아래서 보이는 건 우리 집뿐이었으니 말이다.


   이 빨간 벽돌 이층 집은 원래 노란색 담벼락에 슬레이트 지붕을 가진 단층집이었다. 나무로 된 현관문이 전부이고, 연탄보일러를 때는 그런 집. 화장실보다는 뒷간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음침한 곳에 있는 화장실. 나무로 만든 푸세식 화장실과 밤에만 켤 수 있지만, 누구도 켜고 싶지 않은 빨간 등이 매력적인(?) 그런 집. 태풍이 불어서 담벼락이 무너지는 바람에 지붕이 내려앉아 창문으로 드나들기도 하고, 늘 쥐들이 천장에서 쿵쿵대던 그런 집이 빨간 벽돌 이층 집으로 바뀐 건 내가 6학년 때였다.


   5학년이 되던 해, 우리 집에 큰 돌풍이 몰아쳤다. 사진 씨가 음주운전으로 경찰 옷을 벗어야 했다. 다행히 약간의 퇴직금과 연금을 받을 수 있었고, 그 퇴직금을 기초 삼아 집을 새로 짓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근처 단칸방에 월세로 살게 됐다. 매일매일 집을 허물고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 올리는 걸 지켜본 집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집은 사진 씨의 자부심이자, 우리 가족 모두의 자랑이었다. 사진 씨는 주방용 가위 하나로, 자그맣게 꾸며진 화단을 가꾸셨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날은 붓을 들고 돌 틈 사이사이를 쓸기도 했다.


   우리 집 아래로도 빼곡하게 들어찼던 집들이 모두 사라졌다. 딱 우리 집을 기준으로 그 뒷집들은 재개발 대상에서 제외됐다. 게다가 우리 집 앞에 있던 춘여고는 저 멀리 이사를 가버려,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기까지 폐교처럼 건물은 방치되어 있었다.(주: 거기서 그 언젠가 런닝맨 폐교특집을 찍은 건 안 비밀이다) 어느 순간, 우리 집 주변이 황량하고 을씨년스럽게 변했다. 그 와중에 사진 씨가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난동을 부리셨고, 난 그날 이후로 나의 사랑이었던 그 빨간 벽돌 이층 집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리고 말았다.   


   내가 결혼하고, 1년 뒤쯤인가 사진 씨와 성심 씨는 그 집을 팔아 버리셨다. 그리고 성심 씨가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 아파트는 나의 신혼집 근처이기도 했다. 빨간 벽돌 이층 집에는 일부러 가지 않으면 갈 일이 없게 됐다. 오만 정이 다 떨어졌으니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사진 씨도 성심 씨도 세상을 떠나고 나도 인천에 와서 산 지,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내가 살던 그 집에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휴가차 내려간 춘천에서 남편에게 그 동네에 가보자고 했다. 떡하니 나풀거리는 빨간색, 하얀색 깃발을 보고는 가슴이 선득해졌다. 2층 원룸에 무당이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하, 이젠 무당까지 들어오다니, 이 집과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싶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이 흘렀다. 작년 휴가 때, 또 문득 그 집이 생각났다. 그래도 내가 30년 가까이 살았던 집인데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다행히 깃발은 사라졌다. 무당집임을 알리는 스티커만 창문에서 떼어내려다 실패한 흔적이 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내 방 앞에 쭉 깔린 나무 데크였다. 그 옛날 뒷간 자리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내 방 앞으로 나무 데크가 쭉 깔려있고, 주차장과 함께 춘천 시내가 바라다보이는 자리에 예쁜 의자가 놓여 있었다. 딱 사진을 찍기에 좋은 포토 스폿으로 바뀌어 있었다.


   같이 갔던 까꿍이에게 여기가 엄마가 살았던 집이라며, 설명해 주곤 예쁜 의자에 앉아서 함께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올해 휴가에 또다시 그 집을 찾았다. 올해는 그 데크 뒤로, 커뮤니티 돌봄 센터가 생겼다. 뒤늦게 찾아보니, ‘봉의산 비탈마을의 반란’이란 주제 아래 만들어진 건물이란다. ‘교동 보물섬’ 사업의 일환이라나?! 내가 살던 그 집이,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집이 아니게 됐다.

   너무도 근사하게 변해버린 집 주변을 보면서, 그럼에도 여전한 모습으로 서 있는 그 집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새삼 빨간 벽돌 이층 집에 대한 추억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 옛날 뒷간을 갖고 있던 슬레이트 지붕 집도, 모든 걸 다 허물고 집터를 닦던 그 풍경, 벽돌이 한 장 한 장 올라가던 그 모습들. 하굣길에 가방을 멘 채, 달라진 모습을 찾던 어린 날의 나도, 팔을 걷어붙이고 벽돌을 바르던 사진 씨도, 무엇보다 봉의산과 가까워서 이 집이 최고라던 성심 씨도 모두 모두 내게 달려들었다.


   아예 변하지 않을 순 없을 것이다. 언젠가 그 빨간 벽돌 이층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직은 그 자리에 그렇게 있어 줘서, 더욱이 그 주변이 알록달록 예쁜 색깔로 물들어서, 외롭지 않게 잘 지내는 것 같아서 감사했다.


   내가 살던 그 집, 그 집이 너여서 고마웠어.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여덟번째

#Ah-choo(아주)_잘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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